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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한 긴장 가득 ‘헤어질 결심’… 칸은 7분간 기립박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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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한 긴장 가득 ‘헤어질 결심’… 칸은 7분간 기립박수 보냈다

입력
2022.05.24 10:12
수정
2022.06.04 17:4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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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칸영화제 공식 상영회 마쳐

배우 탕웨이(왼쪽부터)와 박찬욱 감독, 배우 박해일이 23일 오후 제75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헤어질 결심'의 공식 상영회를 마친 후 뤼미에르대극장을 나서고 있다. 칸=뉴스1

배우 탕웨이(왼쪽부터)와 박찬욱 감독, 배우 박해일이 23일 오후 제75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헤어질 결심'의 공식 상영회를 마친 후 뤼미에르대극장을 나서고 있다. 칸=뉴스1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이 첫 공개됐다. 23일 오후 6시(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리고 있는 제75회 칸영화제에서다. ‘헤어질 결심’은 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이날 뤼미에르대극장에서 공식 상영회를 열었다. ‘헤어질 결심’은 박 감독이 ‘아가씨’(2016)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다.

엘리트 형사 해준(박해일)과 용의자 서래(탕웨이)가 주인공이다. 해준은 성실하다. 잠복근무를 취미처럼 즐긴다. 피의자에게 예의 바르고 형사의 품위를 중시한다. 서래는 중국에서 왔다. 남편이 등산 중 숨졌다. 용의선상에 올라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고, 알리바이는 확실하나 수상쩍다. 해준은 서래를 감시하고 수사하다 서래에게 빠져든다. 서래 역시 해준과 농밀한 감정을 나누려 한다. 위험한 사랑이다. 해준은 아내가 있고, 서래는 남은 의혹이 아직 짙다.

‘헤어질 결심’은 전형성을 벗어난 로맨스 영화다. 미스터리가 있고 살인사건이 있으며 종국에는 사랑이 있다. 고전영화의 풍취가 담겼으나 박 감독만의 인장을 지녔다. 초반부는 필름 누아르(1940~1950년대 유행했던 할리우드 영화 유형)를 연상시킨다. 원칙을 지니고 평탄한 일상을 살던 한 남자의 삶이 매혹적인 여자 때문에 송두리째 흔들리는 모습은 필름 누아르 영화들을 닮았다. 하지만 ‘헤어질 결심’은 서래를 팜 파탈(남자를 파멸로 내모는 치명적인 여인)로 한정하지 않는다. 스릴러에서 로맨스로 위치를 바꾸며 새로운 영화 세계를 선사한다.

형사 해준(왼쪽)은 서래를 수사한다. 후배 형사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해준은 서래를 무죄라 여긴다. CJ ENM 제공

형사 해준(왼쪽)은 서래를 수사한다. 후배 형사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해준은 서래를 무죄라 여긴다. CJ ENM 제공

박 감독의 전작들이 그렇듯 세공술이 돋보인다. 어디서 본 듯한 진부한 장면은 거의 없다. 촬영 편집 음악 미술 등 모든 면이 정상급이다. ‘살인은 흡연과 같아서 처음만 어렵다’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여인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품위는 자부심에서 나온다’ 등 유행어로 변신할 만한 대사를 여럿 품고 있기도 한다.

박 감독이 전작들의 모습과 ‘헤어진’ 것도 눈 여겨 볼 대목이다. 피가 흥건한 폭력 장면도, 격정을 나누는 침실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헤어질 결심’은 언뜻 보면 '순한 맛' 박찬욱 영화이나 박 감독의 영화가 평이해졌다거나 개성을 잃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요컨대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월드’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영화다.

‘헤어질 결심’은 박 감독이 영국 런던에서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2018) 작업을 할 때 태동했다. 22일 오후 칸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박 감독은 "(단짝 시나리오 작가) 정서경(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 등 각본)이 가족과 여행을 왔고, 카페에서 만나 '아무 말 대잔치'를 하면서 다음 영화를 논의하다"가 '헤어질 결심'이 시작됐다고 했다. 박 감독은 "신사적인 형사가 나오는 영화"를 제안했고, 정 작가는 "중국 여자가 상대역으로 나오면 좋겠고 탕웨이가 연기했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박 감독은 “탕웨이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구상했다”며 “상대역으로 형사 박해일을 염두에 두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캐스팅이 우선이라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탕웨이와 박해일에게 출연 제안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고전영화 ‘밀회’(1945)와 노래 ‘안개’가 박 감독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박 감독은 “어린 시절 TV로 ‘밀회’를 봤는데 두 남녀의 애틋한 감정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고 했다. 그는 “‘안개’로 시작해 ‘안개’로 끝나는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감독은 “15세 이상 관람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헤어질 결심'에서 산과 바다는 주요 공간인 동시에 상징성을 띤다. 서래(탕웨이) 뒤 벽지를 산인 듯 바다인 듯 묘사한 미술이 인상적이다. CJ ENM 제공

'헤어질 결심'에서 산과 바다는 주요 공간인 동시에 상징성을 띤다. 서래(탕웨이) 뒤 벽지를 산인 듯 바다인 듯 묘사한 미술이 인상적이다. CJ ENM 제공

23일 ‘헤어질 결심’ 상영이 끝난 후에는 7분가량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환호를 보내는 관객이 적지 않았다. 박찬욱 감독은 “이렇게 길고 지루하고 구식의 영화를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 웃음과 환호와 박수를 다시 이끌어냈다. 40대 프랑스 여자 관객은 “영화가 살짝 길지만 사랑이 담긴 이야기가 재미있었다”며 “노래 ‘안개’가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40대 여자 관객은 “배우들의 연기가 그럴 듯하다(Believable)”고 말했다. 영화 투자 쪽에서 일한다는 30대 남자 관객은 “미스터리와 형사 이야기, 로맨스가 섞여 있으나 이것들이 제대로 융합돼 작동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외국 언론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영국 일간 더 가디언은 “부정과 도덕적 의무 사이에서 찢겨진 기혼 형사에 대한 박 감독의 이야기가 매 장면마다 관객의 허를 찌른다”며 별 5개를 부여했다. 미국 연예전문매체 할리우드 리포터는 “게임의 정점에 있는 월드 클래스 예술가”라는 표현으로 ‘헤어질 결심’의 완성도를 높이 평가했다. '헤어질 결심'은 다음 달 29일 개봉한다.

칸=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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