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배달이나 대리운전을 하는 노동자 가운데 80%가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지 않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 국민 평균 건강검진 수진율(68.2%)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로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리기사 82.4% 폭언·협박 경험... 정신건강 '적신호'
장진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23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개최한 '프리랜서 노동권 보장 정책토론회'에서 플랫폼노동자 500명(음식배달노동자 250명·대리운전노동자 250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응답자 가운데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고 있는 비율은 배달노동자 19.0%, 대리운전노동자 22.5%에 그쳤다.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 이유로는 '필요성을 못 느껴서'가 38.3%, '언제 어디서 건강검진을 받는지 몰라서'가 20.7%를 차지했다.
문제는 이들의 노동시간과 강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 음식배달, 대리운전기사의 노동시간은 각각 주 58.5시간, 49.6시간으로 우리나라 임금노동자 주당 평균 노동시간(40.7시간)을 크게 상회했다. 음식 배달·대리운전 노동자는 야간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장시간 운행으로 전신진동과 매연, 소음 등에 노출되며 건강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장 위원의 지적이다.
이들은 정신건강 측면에서도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년간 고객으로부터 폭언이나 욕설, 협박 등을 경험한 배달노동자는 39.2%, 대리운전노동자는 82.4%였다. 배달노동자의 91.8%와 대리운전노동자의 88.4%는 이런 일을 겪어도 '그냥 참고 넘어간다'고 답했다.
"정부에 전담부서 두고 예산 확보해야"
산업안전보건법은 야간작업이 많거나 특수 유해물질 공간에서 작업하는 이들을 특수건강검진 대상자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배달·대리운전기사들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즉 근로자가 아니어서 건강진단 받을 권리가 없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청소노동자와 택배기사, 배달종사자, 대리운전기사를 대상으로 필수노동자 직종별 건강진단 사업을 진행했는데, 사측이 산재보험료를 내는 경우에만 검진비의 80%를 지원해주는 형식이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토론자로 참석한 이진우 한일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 과장은 "고용부가 일부 특고에 한해 특수건강진단을 시행하는 방식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나 일시적인 주먹구구식 대책보다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장 연구위원도 "고용부 산하기관인 안전보건공단에 플랫폼노동자 건강관리를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하고, 플랫폼노동공제회·재단 등을 통해 관련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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