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경쟁 불공정 시비로 얼룩진 방송가
임영웅 방송점수 '0'점... KBS '뮤뱅' 공정성 논란
음원·음반 성적보다 TV·유튜브 출연이 중요?
"인기 객관적 지표 못 돼"
방송사 '갑질' 도구 전락 지적
"일본 지상파엔 '방송 점수' 없어"
모두 1위 출신인데, 1월 데뷔한 케플러는 왜?
Mnet은 자사 오디션 출신 '신인 띄우기'로 구설
K팝의 경쟁을 둘러싸고 방송가에서 공정성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케이블채널 Mnet이 자사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돼 데뷔 두 달여밖에 안 된 신인을 유명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시켜 특혜 논란을 빚더니, 이번엔 공영방송 KBS가 음악 프로그램 순위 집계 불공정 의혹으로 잡음을 내고 있다. 국내 방송사들이 K팝 육성을 빌미 삼아 문화 권력의 주도권을 쥐려다 공정과 상식의 가치를 소홀히 다뤄 역풍을 맞고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에게 K팝은 온라인에서 주로 소비되며 탈권력적인 콘텐츠로 사랑받고 있는데, 정작 국내에선 방송 권력과 얽혀 불공정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국내 K팝 산업의 그늘이다.
시청자 선호는 모두 '0점', 방송 점수는 5,000배 차이
KBS 시청자권익센터는 빗발치는 '뮤직뱅크' 시청자의 비판 청원으로 요즘 발칵 뒤집혔다. 순위 산정 기준의 하나인 '방송 횟수 점수'가 불공정하고 불투명하다는 게 집단 항의의 요지였다.
잡음이 인 과정은 이렇다. 가수 임영웅은 13일 방영된 '뮤직뱅크'에서 신곡 '다시 만날 수 있을까'로 2위를 차지했다. 이날 1위곡은 이달 초 데뷔한 그룹 르세라핌의 '피어리스'였다. 임영웅은 음원 점수와 음반 점수 등에서 르세라핌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방송 횟수 점수에서 0점을 받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1위를 차지한 르세라핌의 방송 횟수 점수는 5,348점이었다. '뮤직뱅크'는 디지털 음원 60%, 방송 횟수(TV, 디지털, 라디오) 20%, 시청자 선호도 10%, 음반 5%, 사회관계망서비스(소셜미디어) 5% 점수를 합쳐 순위를 매긴다. 방송 횟수가 총점의 20%에 불과하지만, 임영웅과 르세라핌의 1위를 가리는 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22일 KBS에 따르면 임영웅과 르세라핌의 각 해당 곡은 'KBS국민패널' 1만7,6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중가요 선호도 조사에서 모두 0점을 받았다. 불특정 시청자에 똑같이 외면받았는데, 임영웅은 방송 횟수 점수에서 0점을 받고 르세라핌은 어떻게 5,348점을 얻었을까. 방송 횟수 점수는 KBS 방송, 유튜브, 라디오 출연과 선곡 횟수 등을 바탕으로 매겨진다. 가요계 관계자들은 라디오에서 가수의 노래가 얼마나 흘러나왔는지보다 TV와 유튜브, 라디오에 얼마나 자주 출연했는지와 TV에서 신곡 뮤직비디오가 소개됐는지 여부 등이 방송 점수를 따는 데 더 유리하다고 입을 모았다. '뮤직뱅크'에 출연한 아이돌그룹 기획사 고위 관계자는 "예능 프로그램 말미에 뮤직비디오 하나 걸면 몇백 점"이라며 "방송과 유튜브 출연 점수는 정확히 모르지만, 새 앨범이 나오면 '뮤직뱅크' 순위 집계 기간을 고려해 되도록 TV와 유튜브 콘텐츠에 출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논란의 '방송 점수' KBS가 MBC·SBS보다 두 배 높아
임영웅과 르세라핌의 1위 대결 순위 집계가 이뤄진 기간은 2일부터 8일까지다. 취재 결과, 이 기간에 르세라핌은 KBS 유튜브 콘텐츠 '리무진 서비스'(3일)와 '아이돌 인간극장'(7일)에 잇따라 나왔다. 하지만 임영웅은 같은 기간 KBS 유튜브 채널 'KBS K팝'을 비롯한 KBS의 여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았고, 이 지점이 방송 점수를 따는 데 불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방송사의 음악 선곡은 제작진의 자의적 판단이 크게 작용한다. 더욱이 예능 프로그램과 유튜브 출연은 연예 활동의 일부이지, 노래의 인기를 가늠하는 객관적 척도로 쓰이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게 시청자들의 비판이다. "방송 점수는 결국 가수와 기획사가 방송사를 위해 열심히 일할 때 잘 받는 점수"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KBS(총점 20%)는 이 논란의 방송 점수를 MBC·SBS(총점 10%)보다 두 배 높게 활용하고 있다.
결국 KBS 시청자 청원 게시판엔 '뮤직뱅크 방송 점수 제도 공개 및 감사 요청'이란 청원 글이 15일 올라왔고, 이날 기준 1,894명이 동의했다. 논란의 불길이 거세지자 KBS 관계자는 "특정 음원 송출을 요구하는 외부의 영향이 있을 수 있어 라디오 프로그램명 등을 공개하기는 어렵다"고만 해명하고, 그 외 구체적인 방송 점수 집계 기준은 밝히지 않았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일본에도 지상파 방송사가 방송 점수 등 자체 점수를 따로 내 순위를 매기는 음악 순위 프로그램은 없다"며 "방송 점수는 기획사의 영향력도 작용하니 방송 점수를 아예 없애거나 낮추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는 의견을 냈다.
데뷔 두 달 된 그룹이 브레이브걸스와 경쟁한 이유
앞서 Mnet은 방송 중인 아이돌 경연 간판 프로그램 '퀸덤2'에 자사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 '걸스플래닛 999: 소녀대전'(2021) 출신 그룹 케플러를 출연시켜 형평성 논란을 일으켰다. 씨스타 출신 효린, 우주소녀, 이달의 소녀, 브레이브걸스, 비비즈 등 활동 경력 4년 이상 유명 가수들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1월 데뷔한 신인 그룹(케플러)을 같은 경쟁 무대에 세우는 건 방송사의 노골적 띄워주기라는 비판이다. Mnet이 배출한 케플러는 CJ ENM 계열사인 스윙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밖에선 '우리와 잘 지내야 한다'는 '갑질'로 비칠 수 있는 방송 점수와 케플러 사례는 방송사가 대중문화시장에서 권력을 행사하려 해 생긴 문제"라고 꼬집었다. Mnet 관계자는 "'퀸덤2'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한 경험이 있는 걸그룹이 출연 대상"이라며 "케플러는 음악 프로그램 1위를 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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