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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신(新)잔혹사

입력
2022.05.1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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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이달 1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직원 뒤로 미국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그래프가 보인다. 최주연 기자

이달 1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직원 뒤로 미국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그래프가 보인다. 최주연 기자

주식 투자로 큰돈을 잃은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누굴까.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번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난 동의하지 않는다. 피 같은 돈은 물론 영혼까지 탈탈 털린 투자자가 그 순간 가장 부러운 사람은 '주식 투자를 모르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손써볼 도리 없이 순식간에 사라진 원금 앞에서 수도 없이 읊조리게 되는 말이 "내가 왜 주식을 해서"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널 모르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바로 그 마음. 작금의 개미(개인투자자)들 심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난해 11월 30일이었다. 코스피가 6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1년 만에 2,900선을 내준 날, 호들갑을 떨며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에게 물었다. "너무 많이 떨어진 것 아니에요? 언제 반등할까요?" 불과 넉 달 전인 7월 사상 최고치인 3,305.21까지 치솟았으니, 내 딴에는 고점 대비 14% 정도 떨군 코스피 조정이 과도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코스피 심리적 지지선이 어느새 3,000선이라도 된 것마냥 호들갑을 떨었던 그때가, 사실은 지금 개미들이 겪고 있는 이 엄청난 고통의 시작이었다.

최근 동학개미, 서학개미 할 것 없이 초토화된 증시에 아우성이다. '3,300 돌파'란 축포를 터뜨린 지 1년도 안 돼 코스피는 2,600선 안팎으로 고꾸라졌다. 블랙홀처럼 글로벌 자본을 빨아들이던 미국의 나스닥도 1년 반 전 주가로 되돌아갔다. 원·달러 환율은 숫자만 보면 경제위기급이다. 고물가, 미국발 금리 인상, 이 와중에 벌어진 우크라이나 전쟁, 경기가 후퇴할 거란 불안까지.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불어 닥친 복합 위기가 쉽게 해소될 수 없을 거란 극도의 공포심리가 자산시장을 찍어 누른 결과다.

코스피 42년 역사에 이런 위기가 처음도 아니다. 코로나19란 미지의 영역에 경악하며 불과 7거래일 만에 26% 폭락한 결과, 주가가 1,400까지 고꾸라졌던 게 불과 2년 전 봄이다. 그런데도 지금의 봄이 유독 잔인하게 다가온다. 우리 증시의 판이 달라졌기 때문일 거다. 지난 2년 새 우리 시장은 주식 계좌가 하루 수십만 개씩 폭증하며 전례 없는 유동성 파티를 벌였다. 고물가와 고금리를 경험해보지 못하고 자산시장에 뛰어들었던 젊은 투자자들로선, 긴축의 'ㄱ'자만 나와도 난리가 나는 지금의 시장이 너무도 가혹하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싸게 돈을 빌려 시드머니를 마련한 2030이 적지 않다. 다달이 이자는 나가는데 투자금은 매일 까먹는 탓에 강제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는 푸념이 매일 온라인 커뮤니티를 달군다. 이런 식이다. '개미들이 오늘부터 할 일, 배달 앱 지우기, 보일러 끄기, 휴지 한 칸만 쓰기.' 웃고 넘길 대목이 아니다. 소득이 낮은 2030이 경제적 파산위기에 처하면 금융 부실은 더 악화되고, 빚 갚느라 이들이 지갑을 닫으면 결국 경기도 식는다.

2030 스스로도 기대 수익률을 낮추고 빚투를 자제해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손실이 커질수록 빨리 만회하고 싶은 절박함도 커진다. 하루 20~30%씩 오르내리는 종목들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른바 '몰빵'의 유혹까지 등을 떠민다. 시장 상황이 좋아도 하면 안 되는 일들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이 잔인한 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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