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평등 및 원주민 권리 등 강조
2019년 대규모 시위 교훈 헌법에 담아
개헌 찬성 여론 30%대... 통과 미지수
남미 칠레가 새 헌법 초안을 공개했다. 그간 칠레의 사회 불안정을 불러왔던 요인이 뿌리 깊은 ‘불평등’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소외됐던 원주민 집단은 물론 양성 평등을 새 헌법에 명시했다. 하지만 새 헌법이 되레 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는 반발이 나오는 등 개헌 반대 여론도 비등하면서 최종 관문인 국민투표를 통과할지는 불투명하다.
16일(현지시간) 칠레 일간 라테르세라에 따르면 마리아 엘리사 킨테로스 칠레 제헌의회 의장은 이날 북부 안토파가스타에서 새 헌법 초안을 공식 발표했다. 공개된 새 헌법 초안은 서두부터 평등을 강조했다. 본보가 입수한 새 헌법 초안에 따르면 2조는 “국가는 민주주의와 시민권 행사를 위해 효과적 대표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양성 평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국가 조직과 공기업 등에서의 여성 할당제를 헌법에 명시했다. 새 헌법에는 “모든 국립대학과 헌법기관, 행정부 고위 기관 및 공기업 및 준공기업의 구성원 중 50%를 여성으로 한다”고 적시했다. 또 이를 모든 공공 및 사기업에도 확대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원주민의 권리 보장 조항도 새 헌법에 담길 방침이다. 3조는 “역사적으로 배제된 집단의 민주적 참여 및 정치 보장은 국가의 몫이 될 것”이라며 “이러한 집단들이 공공 정책 및 법률 제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보장한다”고 규정했다.
칠레는 2019년 10월 수도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기점으로 사회 내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고 주거ㆍ교육ㆍ의료ㆍ연금 등 복지 분야 향상을 위해 개헌을 추진했다. 이어 지난해 5월 제헌의회 선거를 실시한 뒤 7월 헌법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10개월 만인 이날 공개된 초안은 미세조정을 거친 후 오는 9월 4일 국민투표에 부쳐질 예정이다.
이번 개정 헌법은 지난 1973년부터 1990년까지 칠레를 철권 통치했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는 데에 방점을 찍었다는 평가다. 영국 가디언은 “1980년 제정된 피노체트 시대의 헌법은 2005년 수정조항에서 대대적으로 바뀌었지만 주거권 등 특정 권리는 여전히 삭제된 상태였다”며 “독재자의 이념적 지문이 그대로 남아있던 것”이라고 짚었다.
새 헌법 초안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에 따르면 킨테로스 의장은 초안 발표 자리에서 “헌법 조문 하나하나를 통과시킬 때마다, 2019년 대규모 시위에서 제기된 더 나은 의료와 교육, 연금 같은 문제에 대한 답을 담았다”며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완전히 민주적으로 기초한 헌법 초안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아르투로 수니가 제헌의회 의원은 “불행히도 이 헌법은 499개나 되는 조항으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하위법으로 규정할 수 있는 사안들까지 모두 헌법에 담으려 하면서 헌법이 비대해졌다는 이야기다. 케네스 분케르 칠레 정치 분석가는 가디언에 “권위적 헌법 대신 분열적 헌법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국민투표 통과 여부도 불투명하다. 가디언은 칠레 시민들의 개헌 지지 여론이 최근 급속히 식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2019년 대규모 시위 이후 개헌 찬성 비율은 80%를 웃돌았지만 최근에는 38%를 나타내고 있다. 개헌 반대 여론은 46%로 치솟았다. 다만 칠레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자 학생운동 지도자 출신 좌파 성향 가브리엘 보리치는 개헌을 찬성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