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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학벌사회가 문제다

입력
2022.05.18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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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이어 한동훈에게서 느낀 착잡함
부자아빠-가난한 아빠의 '대물림'
학벌지상주의 있는 한 해결 어려워

한동훈(왼쪽) 법무부 장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청문회. 뉴시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동훈(왼쪽) 법무부 장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청문회. 뉴시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작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청문회였지만 재연은 새 정부 법무부 장관 지명자 한동훈의 청문회에서였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떠오른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로남불'의 데자뷔(기시감)가 아니었을까. 돈과 인맥, 사회적 지위를 가진 부모가 자녀에게 최고 학벌을 물려주기 위해 법과 도덕의 경계를 넘나들며 위험한 곡예와 비상식적인 스펙 쌓기를 일삼는 행위가 남이 하면 일탈이지만 내 가족에게는 불가피한 것이다.

웬만한 연예인 뺨칠 만큼 높은 명성과 영향력, 인기를 누려온 두 사람과 그들의 가족에 대해 국민들이 먼저 느끼는 감정은 분노일 것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이런 사건들이 왜 계속되는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조국 자신은 사과했지만 그의 가족은 억울한 피해자일 뿐이라는 주장은 여전히 드세다. 한동훈 가족의 수상쩍은 스펙 쌓기에 대한 진솔한 사과나 구체적 조치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의 자녀가 외국대학을 목표로 하고 그동안의 행적이 입시에 활용되지 않았다는 변명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지는 않다.

돈과 지위와 권력을 가진 부모가 법과 도덕의 울타리를 오락가락하며 자녀의 학벌자본을 구축해 주는 행위는 한국사회에서 암암리에 이뤄져 온 것으로 보인다. '맹모삼천지교', 자식 교육을 위해 가난한 어머니가 몇 번이라도 이사를 감내하는 헌신의 서사는 신자유주의 경쟁사회에서 자식의 학벌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드라마 스카이캐슬로 탈바꿈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보통의 샐러리맨 아빠들이 출근 길 자동차에서 오디오북까지 사서 들었다는 책이다. 그들은 모두 자식들에게 '부자 아빠'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부자 아빠는 자녀의 교양과 지식, 멋진 학벌과 인맥을 사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난한 아빠는 어땠을까. 영어유치원, 비싼 사교육과 해외연수 따윈 꿈도 꿀 수 없는 가족에서 아이들과 부모들은 2022년 5월 '가정의 달'을 어떤 심정으로 보내고 있을까.

1972년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과 조나단 콥은 '계급의 숨겨진 상처들'로 경종을 울렸다. 계급 간 격차가 커지는 사회에서 가난한 노동자 가족의 아이들이 겪는 상처와 마음속 깊이 쌓여가는 무력감에 대한 보고서다. 2015년 로버트 퍼트넘은 '우리아이들'에서 사회경제적 양극화 속에서 가족을 통한 부의 대물림이 가난한 가족 아이들의 꿈을 어떻게 짓밟는지 고발했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이를 반 빈곤정책의 자료로 삼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쉬운 답변은 당사자들과 상류층의 반성이겠지만, 영양가 있는 충고는 아니다. 받아들일 것 같지 않으므로. 또 제도의 '공정성'을 높여가야 한다는 답안도 정답은 아니다. 어떤 제도든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공정함의 판단이 다를 수 있고, 제도의 빈틈을 교묘히 찾아나가는 수많은 지식기술자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해결책은 '학벌'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자는 주장이다.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묻는 대신 인품과 능력,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이 말에 내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적겠지만, 진심으로 찬성하는 이도 많지 않을 것이다. 아직 우리들은 출신학교는 개인이 노력한 결과라는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으며, 학벌만큼 인간 능력 평가에 적합한 수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자의 믿음은 두 법무장관 가족의 사례에서 허구성이 드러난다. 후자의 생각은 우리 사회의 평가 수단을 더 개발하고 완성해 가야 하는 문제다. 학벌이란 간판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무용지물이 될 때 스카이캐슬 신화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가난한 가족의 상처도 회복될 것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ㆍ전 한국여성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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