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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청정국’은 이젠 옛말?

입력
2022.05.18 04:1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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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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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물건을 홍보할 때 ‘중독성 강한 만족감’을 강조하기 위해서 마약 매트리스니, 마약 베개니, 마약 토스트니, ‘마약’이라는 단어를 형용사처럼 많이 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마약 관련 사건을 들여다보면, ‘마약’이 그렇게 가볍게 사용할 만한 단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최근 들어서도 필로폰에 취한 중국 국적 40대 남성이 60대 남성을 돌로 숨지게 하는 사건, 마약에 취한 60대 딸이 80대 노모를 둔기로 살해하려 한 사건, 마약을 투약하고 대낮에 길 한복판에서 지인을 살해한 사건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마약 관련 강력 사건이 터져 나오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가 ‘마약 청정국’에서 벗어난 지는 꽤 오래됐다. 유엔은 마약류 사범이 10만 명당 20명 미만일 때 마약 청정국으로 지정하는데, 우리나라는 2016년 25.2명으로 이미 오래전에 그 지위를 잃었다. 대검찰청이 얼마 전 발간한 ‘2021년 마약류 범죄 백서’를 보면 지난해 마약류 사범이 1만6,153명에 이르며, 드러나지 않은 암수 마약 범죄는 이보다 10배가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10·20·30대 젊은 층이 쉽게 마약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19세 이하 청소년 마약류 사범은 450명으로 4년 전보다 278.2% 급증했다. 스마트폰 이용이 보편화하면서 젊은 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포털사이트에서 마약류 판매 광고에 쉽게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드러나지 않은 마약 수요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적발 건수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관세청이 지난해 적발한 밀수 마약류는 1,054건(1,272㎏)으로, 전년보다 적발 건수는 2.1배, 적발량은 7.57배 증가해 관세청 개청 이래 가장 많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마약류 사범이 1만6,000명이 넘어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눈덩이처럼 늘고 있지만, 중독 치료를 받는 환자는 연간 200명 정도에 불과하다. 마약 중독자를 위한 ‘마약 중독 치료 보호 지정 병원’이 전국에 21곳이 있지만 실제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은 고작 2곳뿐이다.

예산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에서 단약(斷藥)을 돕는 유일한 기관이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인데, 여기에 지원되는 연간 예산이 33억 원에 불과하다. 21개 마약 중독 전문 치료 병원에 투여되는 예산은 고작 4억 원이다. 과연 정부가 마약을 퇴치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마약 중독 치료 보호 지정 병원은 정부로부터 받아야 할 치료비 5억 원을 받지 못해 얼마 전 문을 닫고 말았다.

평범한 가정주부와 회사원, 청소년까지 마약에 손대고 있는 현실에서 마약 문제를 전담할 부처가 없는 것도 문제다. 경찰, 검찰,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으로 마약 수사와 단속이 분산돼 있어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정부가 여전히 ‘마약은 소수의 문제’라는 안이한 인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조만간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이미 호미로 막기에는 늦었기에 아예 둑이 터질 때까지 어쩔 수 없이 기다려 보자는 심산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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