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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 팔고 버틴 자’들이 또 이겼다

입력
2022.05.16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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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장인철수석논설위원

윤 정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부동산 세제ㆍ규제 완화 지나치면 독
투기억제ㆍ1주택 정책 일관성 지켜야

원희룡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16일 온라인으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원 장관은 "집값 하향안정세"를 목표로 제시했으나, 규제완화 기대감 등으로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연합뉴스

원희룡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16일 온라인으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원 장관은 "집값 하향안정세"를 목표로 제시했으나, 규제완화 기대감 등으로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연합뉴스

뉴욕 월스트리트엔 ‘연준에 맞서지 말라(Don’t fight the Fed)’는 오랜 금언이 있다. 미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은 주식과 채권, 통화에 이르는 모든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여건을 조성하는 만큼, 투자자들로서는 연준의 의지에 순응해 투자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연준을 너무 믿지 말라’는 금언도 있다. 하지만 어떤 금언이든, 경제 진단과 정책 일관성에 있어서 연준에 대한 미국인들의 견고한 신뢰를 반영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부동산시장에는 반대의 금언이 존재한다. ‘정부 믿으면 망한다’거나, ‘정부 반대로만 하면 돈 번다’는 등의 얘기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낮은 현실을 드러낸다. 왜 아니겠는가. 1970년대 이래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입만 열면 부동산투기 박멸하고 집값 잡겠다고 큰소리를 쳤으나, 그 말에 순응한 자들은 ‘쪽박’ 찼고, 거스른 자들은 ‘대박’을 친 게 엄연한 현실 아닌가. 이제 윤석열 정부는 그런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지만, 또다시 실패의 길로 들어서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적지 않다.

집값 폭등으로 청년ㆍ서민 주거사다리를 거의 괴멸시킨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은 정권교체를 부른 민심이반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였다. 따라서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문 정부 부동산정책을 실패로 규정하고, 대대적 정책전환을 예고한 건 당연했다. 지나친 규제와 시장 개입 대신 시장원리 회복을 통해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꾀하겠다고 했다. 믿을 만한 공급방안을 마련해 주택 부족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공약도 냈다.

이런 공약대로 새 정부는 지금 구체적인 부동산정책 전환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중이다. 우선 실효적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서울 등 도심 아파트 재건축 규제완화 계획을 밝혔다. 1기 신도시 재정비 계획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는 방침도 재확인 했다. 부동산 세제에서는 종부세 등 ‘징벌적 보유세’를 정상화하는 조치가 가시화했다. 1주택자 종부세는 물론, 다주택자 부담도 줄이겠다는 분위기다.

시장 정상화를 위한 거래 활성화 방안으로는 일단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생애최초구입자에 한해 80%까지 허용하고, 다주택자도 늘려주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특히 지난 10일부터 전격 시행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조치는 새 정부 들어 가장 극적인 조치로 꼽힐 만하다. 수도권 등 규제지역 다주택자가 집을 팔 경우, 기존에는 기본세율 6~45%에, 2주택자는 20%포인트, 3주택자는 30%포인트를 더하는 중과세가 부과됐다. 하지만 이번 유예조치로 향후 1년간은 다주택자라도 6~45%의 기본세율만큼만 양도세를 내면 된다.

문제는 이런 조치들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허물고 있는 현실이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조치만 해도, 문 정부 때인 2020년 ‘7ㆍ10 부동산대책’ 때 시행을 예고하면서 이미 1년간 유예기간을 둬 매물 출회를 유도했다. 하지만 대다수 다주택자들은 ‘버티기’에 들어갔고, 급기야 이번에 양도세 중과가 또다시 유예됨으로써 그때 버틴 다주택자들만 버틴 만큼 시세차익을 더 크게 누리게 된 셈이다.

여권의 한 정치인은 “문재인 정부 반대로만 하면 부동산정책은 성공한다”고 했지만, 틀린 소리다. 정부 정책이 정권과 무관하게 국민에게 신뢰를 얻으려면 사회 다수가 지지하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 부동산시장은 새 정부가 ‘하향안정세’를 목표로 밝혔음에도 집값이 또다시 들썩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책전환에 대한 조바심이 투기 억제나 1주택 유도라는 오랜 정책원칙까지 허문 결과가 아닌지, 냉정한 반성이 절실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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