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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예술이 오늘의 당신에게 말을 겁니다

입력
2022.05.12 20:00
수정
2022.05.13 11:31
25면
0 0
조은아
조은아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KBS1 '예썰의 전당'

KBS1 '예썰의 전당'

새로 방영되는 프로그램의 이름이 '예썰의 전당'이라 했다. 예술분야의 토크쇼를 표방한다니 처음 출연제의를 받았을 땐 말발의 결핍부터 걱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넙죽 동참하기로 한 이유는 순전히 MC(김구라씨)에 대한 팬심 때문이었다. 패널들도 다양했다. 미술, 정치사, 뇌 과학, 그리고 음악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경계를 넘나들며 매주 하나의 예술작품을 선정해 심층적으로 파고들기로 했다. 같은 작품을 두고도 역사적, 미학적, 과학적, 음악적 관점이 다채롭게 만발하니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두 번째 녹화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그림 '모피코트를 입은 자화상'이 주제였는데, 음악적 연결고리를 잇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뒤러의 모노그램

뒤러의 모노그램

독일 르네상스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는 자신의 이름 첫 글자인 A와 D로 독특한 모노그램을 디자인했다. A의 지붕 아래 안온히 자리 잡은 듯한 D를 연상시키는 특유의 문양을 뒤러는 작품마다 새기며 화가로서 뚜렷한 자긍심을 드러냈다. 이 모노그램을 마주하자마자 음악의 영역에서 비슷한 암호들이 절로 떠올랐다. 화가나 서예가가 작품에 낙관을 새기듯 음악가들도 자신 이름의 알파벳 철자를 음표로 치환해 고유의 선율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BACH 모티브

BACH 모티브


쇼스타코비치 모티브

쇼스타코비치 모티브

그 대표적 작곡가가 바흐와 쇼스타코비치이다. 바흐는 이름 철자 BACH를 독일식 계이름으로 변형해 '시b-라-도-시' 모티브를 그의 마지막 작품 '푸가의 기법'에 숨겨 놓았고,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역시 이름의 이니셜 DSCH를 활용해 '레-미b-도-시' 짧은 음형을 현악 4중주 8번에 심어 놓았다. '이 곡은 엄연히 내 작품'이란 자의식의 발현과 다름없겠으나 마치 암호와도 같아 청각적으로 알아차리기엔 난해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므로 청중들은 음표 더미에 묻혀있는 작곡가의 이름 모티브를 캐낼 때마다 묘한 쾌감을 느끼곤 한다. 화가나 음악가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법은 이렇듯 같고도 다르다.

뒤러의 자화상

뒤러의 자화상

뒤러가 정면을 응시하는 자화상으로 고유의 화풍을 개척했듯 음악가들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분투하곤 한다. 그중 독특한 사례가 낭만주의 작곡가인 로베르트 슈만이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분열된 이중인격으로 서로 상반된 창조적 분신을 상정했던 슈만은 악보나 글에서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라는 서명을 빈번히 등장시킨다. 플로레스탄이 외향적이며 역동적인 자아를 드러낸다면, 오이제비우스는 내면적이고 몽상적인 얼굴을 나타낸다. 이렇듯 가공의 인물로 대비되는 이중인격은 같은 곡 안에서도 맞물리거나 번갈아 교차하면서 자아의 심연을 치열하게 탐색한다. 방송에선 '다윗동맹 무곡'을 예로 들어 함께 감상했다. 작곡가 스스로 악보의 끄트머리에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의 이니셜인 E나 F를 기입해 악상의 성격을 선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짧게 발췌한 곡에서도 어떤 성향의 선율에 더 이끌리는지 출연자 각자의 취향을 발견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뒤러의 이야기는 현대인의 자화상으로 이어져 셀카와 부캐까지 확장되었다. 누군가는 더 나은 모습을 보이고픈 본능이라 했고, 누군가는 그래서 허영심에 왜곡되거나 나르시시즘에 갇힐 위험이 있다 꼬집었다. 각자 SNS의 프로필 사진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출연자의 개별적인 성향을 엿볼 수 있어 흥미진진했다. 나의 경우, 평소 즐겨 내거는 반려동물의 사진을 소개하려다 고양이의 충분한 동의를 얻지 못해(눈빛이 딱 그러했다) 막판에 바꾸기도 했다.

매주 일요일 밤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어제의 예술이 품은 '썰'을 통해 오늘의 시청자들에게 통찰과 위로를 전하고픈 바람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매회 프로그램을 여는 MC의 인사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어제의 예술이 오늘의 당신에게 말을 겁니다.

예썰의 전당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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