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비서실장·경제수석 이어 타 부처 차관도
과거 학자 출신 경제수석 임명 때와는 대조적
'한목소리' 강조에도 "견제 없는 정책" 우려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
문재인 정부에서 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재정 문제를 들어 기본소득, 재난지원금 등에 우려를 표했던 홍남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겨냥해 했던 말이다. 문 정부에서 관료, 특히 기재부에 대한 불신은 컸다.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는 “기재부에서 예산 편성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하지만 정권 교체 후 상황이 180도 바뀌고 있다. 기재부는 물론 청와대와 총리까지 고위직을 기재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원팀’을 선언한 윤석열 정부인데, 사실상 ‘관료 원팀’, '기재부 원팀'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11일 정부에 따르면 청와대와 내각 장차관급 인사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기재부 출신 인사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내각을 총괄하는 한덕수 총리 후보자(행시 8회)는 물론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후보자(행시 25회)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행시 22회) △최상목 청와대 경제수석(행시 29회)까지 모두 기재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 재무부가 친정이다.
여기다 기재부에서 분리된 금융위원장에도 역시 재무부 출신인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차관 인사에서도 기재부의 두 차관(방기선 1차관, 최상대 2차관) 외에 조규홍 복지부 1차관이 기재부 출신으로 이름을 올렸다. 아직 차관 인사가 나지 않은 부처가 있고, 조달청, 관세청 등 기재부 외청장 인사도 예정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관급 인사에서 기재부 출신의 약진은 더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 출신 중용은 과거 정부와 사뭇 다른 양상이다. 참여정부 이후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경제수석 중 기재부 관료 출신은 박근혜 정부 때 조원동 경제수석이 유일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사회정책을 전담한 정책실장은 교수 출신인 장하성 주중대사, 경제수석도 마찬가지로 교수 출신인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었다. 이명박 정부 첫 경제수석이었던 김중수 전 한은 총재도 학자 출신이다.
각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도 참여정부의 고건 전 총리 이후에는 △이명박 정부 한승수(정치인) △박근혜 정부 정홍원(법조인) △문재인 정부 이낙연(정치인) 등으로 관료 출신은 없었다.
윤석열 정부가 기재부 출신 일색으로 경제 팀을 꾸린 것은 △고물가 △금융불안 △통상 문제 등 다양한 경제 문제가 불거지는 상황에서 경제 팀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보고 있어서다. 문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 등의 문제를 놓고 당시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 사이에서 벌어진 ‘김&장 갈등’ 같은 사태 재발을 막자는 의도도 담겨 있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를 낼 외부 전문가 없이, 관료 일색으로 구성된 경제팀이 일관된 목소리만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다양한 경제 문제 해결에 방해가 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고위 공무원 출신만으로 구성된 경제팀이 현장 등 밑바닥 경제 분위기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일방향 정책만 내놓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경제 정책의 철학을 공유할 수 있고 유능한 인재를 발탁한다는 측면은 인정하지만, 모두가 같은 배경을 가진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며 “외부 전문가 없이 같은 목소리만 나온다면 정책을 설계하는 과정에서도 충분한 견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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