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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불가능한 검사의 역할

입력
2022.05.1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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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뉴스1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뉴스1

검찰청법 제4조에는 검사의 직무가 자세히 나와 있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고 돼 있다. 칼잡이 역할도 일부 명시돼 있지만 인권 수호가 검사의 기본 역할이란 뜻이다. 검찰이 목숨보다 귀하게 여긴다는 수사권도 인권과 적법 절차의 상위 개념은 아니다.

그런데 10년 가까이 검찰청을 출입했지만 검찰의 존재 이유인 인권과 적법 절차의 중요성을 설명한 검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회적 약자와 서민들을 위해 일한다는 검사도 거의 보지 못했다. 그저 압수수색하고 체포하고 구속하고 기소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수사 대상자를 제압하기 위한 온갖 꼼수와 무용담도 빠지지 않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서, 그들은 수사가 검찰의 본업인 양 이야기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왜곡된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는 검찰의 역할에 대해 “나쁜 놈들 잘 잡으면 된다”고 말했다. 검찰에서 열 수 아래로 취급해온 광역수사대 경찰관들을 제외하면 이처럼 용감한 발언을 한 검사는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머리 속에 박힌 올바른 검찰상은 1990년대 시계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검사가 직접 나서 정치인이나 대기업, 고위 공직자와 경찰들을 때려잡는 모습 말이다. 거악 척결이란 모토를 앞세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던 특수부 검사의 관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검수완박’ 사태를 지켜보면서 검사들이 이렇게 직업정신이 투철한지 처음 알게 됐다. 난데없이 사회적 약자와 서민 지킴이를 자임하면서 직접 수사를 해야 하고 잘못된 경찰 수사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전국 검찰청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3ㆍ1 독립운동 못지않았다. 10년 동안 그 많은 검사들을 만나면서 한 번도 못 들었던 사회적 약자란 말을 열흘 사이에 100번 넘게 들었다.

친한 검사는 덤으로 ‘경찰 데스크 놀이’도 알려줬다. 경찰이 기소 의견 송치한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거나, 무혐의 송치 사건을 기소하면 조직 내에서 ‘훌륭한 검사’로 칭송받는다고 한다. 전국 검찰청에선 최근 수준 떨어지는 경찰 수사를 바로잡으려면 검사가 나서야 한다며 수많은 사례들을 모아 기자들에게 제공했다. 반대 경우도 부지기수지만, 검찰이 그걸 설명할 리는 없다. 기소 의견으로 넘긴 사건을 덮었다가 재수사를 통해 진실이 드러나거나, 무혐의로 송치한 사건을 기소했다가 무죄가 나는 경우 말이다.

검찰은 치부에 대해선 목에 칼이 들어오기 전까진 인정하지 않는다. 검찰만이 정의를 구현할 것처럼 착각하고 검찰 판단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죄가 나와도 법원을 탓하고 의견이 다를 뿐이라고 합리화한다. 이런 인식이 내면화된 검사에게 인권은 나쁜 놈들을 잘 잡기 위한 장식품에 불과할 뿐이다.

1999년 발생한 삼례나라슈퍼 강도살인 사건 피해자인 최성자씨는 진범을 무혐의 처분했던 검사가 찾아와 사과하자 이런 말을 건넸다. "검사에겐 오늘도 내일도 읽을 수많은 기록 중 하나였겠지만 당사자에겐 삶의 전부였다. 억울한 이가 또 나오지 않도록 검사들이 종이 한 장 함부로 넘기지 않고 깊이 봐줬으면 좋겠다." 검사는 "검사에게 가장 중요한 인권을 제대로 살피지 못해 큰 고통을 드렸다"며 눈물을 흘렸다. 나쁜 놈 잡기 전에 단 한 명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게 ‘대체 불가능한’ 검사의 역할이다.


강철원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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