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으로만 간직하던 드라마 작가의 꿈을 이어갈 힘을 얻었어요."
10일 검정고시 초등학교 졸업 시험에 합격한 중증 지체장애인 이송이(30)씨의 말투에서 뿌듯함이 묻어났다. 검정고시, 그것도 '초졸'이 뭐 그리 대수냐 할 수도 있지만 이씨에게는 대단하고도 또 대단한 일이다.
이씨는 태어난 직후 '척수증 근위축증' 진단을 받았다. 온몸의 근육이 점점 마비되는, 그러다 마침내 숨 쉬는 근육조차 마비되면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희소병이다. 병원에선 이씨더러 "열 살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 진단했다. 서른이 된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그나마 근육이 마비되는 속도가 더뎌진 덕분이다.
희소병 때문에 이씨는 학교 근처엔 얼씬도 못했다. 하지만 책 읽고 문제 풀고 글 쓰는 일은 좋았다. 그 덕분인지 초졸 시험 자체는 95점 이상을 받아 어렵지 않게 붙었다. 검정고시 합격 소식에 부모님이 기뻐하셨겠다는 질문에 "부모님도 당연히 합격할 거라고 생각하셔서 그렇게 기뻐하진 않으셨다"고 웃었다.
정작 기쁜 것은 '찾아가는 검정고시' 시험 제도 그 자체다. 이 제도는 이씨처럼 거동이 편치 않은 중증 장애인들의 경우 검정고시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사정을 감안해 2018년 처음 등장했다. 이름 그대로 중증 장애인더러 검정고시 시험장에 나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찾아가서 검정고시를 치를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다.
시범 사업적 성격이 짙어 일단 서울에서 먼저 시행됐고 올해 경기 지역으로 확대됐다. 경기 광명에 사는 이씨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응시했다. 서울 지역에 이 제도가 시행된다는 소식에 서울시교육청에다 때맞춰 '이제는 나도 볼 수 있느냐'고 거듭 문의한 덕분이었다. 서울 이외 지역에선 첫 합격자인 셈이다.
찾아가는 검정고시 덕에 검정고시를 통과할 수 있었던 중증 장애인은 아직은 7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씨는 이 제도야말로 동아줄이다.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 '드라마 작가'에 도전할 자신감을 얻어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가슴 따뜻한 드라마를 쓰고 싶어요. 예전엔 막연하게 생각만 했는데, 이제는 정말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이씨의 목표는 당분간 중졸, 고졸 검정고시 합격이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첫 초·중·고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4,193명이 응시해 3,754명이 합격했다고 밝혔다. 최고령 합격자는 초졸 시험에 응시한 함동호(82)씨, 최연소 합격자는 초졸 시험에 응시한 임하준(11)군이었다. 또한 이번 시험에서는 별도 시험장에서 응시한 코로나19 확진자 40명 중 37명이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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