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 절반 이상 화상·수술 후 새 삶 이지선 교수
신간 '꽤 괜찮은 해피엔딩' 출간
"많은 분이 당연히 제가 사고 이전에 더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하시지만 막상 저는 지금 느끼는 행복의 종류도 많고 크기도 훨씬 커서 굳이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22년 전 교통사고로 전신의 절반 이상에 3도 화상을 입고 대수술을 이겨내 새로운 인생을 살아 온 이지선(44) 한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의 행복을 몰랐던 그때가 전혀 부럽지가 않아서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며 웃었다.
신간 에세이 '꽤 괜찮은 해피엔딩' 출간에 맞춰 최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교수는 "나는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이라고 했다. 사고 이후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지선아 사랑해'(2003)로 40만 독자와 만났던 그는 이번 책에는 생존자가 아닌 생활인으로서의 일상과 행복의 경험을 녹여냈다.
"과거 제 상황은 '사고를 당했다'는 표현이 맞는 말이었겠죠. 하지만 음주운전 교통사고 피해자의 자리에 마음을 두고 머무르지 않으려고 아픈 몸과 마음을 조금씩 흘려보내며 사고와 헤어져 왔어요. 모르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힌 일처럼 툭툭 털고 사고 다음의 제 시간을 살아 왔습니다."
그런 그에게 인생은 동굴이 아닌 언젠가 환한 빛이 기다리는 터널이다. 인생이 늘 기대대로 흐른 건 아니지만 감사할 일이 많았다. 중환자실에서 처음 마신 물의 시원함은 '살아 있다'는 행복을 느끼게 해 줬다. 화상으로 좁아진 콧구멍을 넓히는 수술을 한 후 20년 만에 콧물이 흐르는 경험을 해 기뻤다. 장학금을 받아 2004∼2016년 미국 보스턴대와 컬럼비아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사회복지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교수는 자신에게 '극복'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그는 "장애나 아픔이 일상인 사람들에게 '극복'이라고 표현하고, 배려한다면서 오히려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한번은 테이프 커팅식에 초대받았는데 제게만 가위를 주지 않아 곤란했던 적이 있어요. 손이 불편한 제게 가위를 주는 게 실례라고 생각한 거죠." 여덟 손가락 끝을 모두 한마디씩 절단한 그를 배려한다는 게 오히려 행사에서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 교수는 특히 이번 책을 통해 가족과 친구, 지역사회 등의 '사회적 지지'를 강조했다. 그가 큰 사고를 겪고도 생활인으로 성공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주된 이유가 바로 주변의 지지와 도움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사고 직후 '살이 되고, 가죽이 되고, 피부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와 함께 밥을 떠먹여 준 엄마 덕분에 삶의 용기를 잃지 않았다. 화염 속에서 자신을 구해낸 오빠의 사고 당시 나이는 겨우 스물 여섯이었다. "제가 대단한 사람이 아님에도 누군가의 끊임없는 지지와 도움이 있어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어요."
그는 또 "남들과의 비교가 아닌 내가 지금 누리는 오늘에서 감사할 일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 후 불행의 조건을 많이 가졌던 그가 자주 행복을 느낀 것도 그래서다. 그는 "남과의 비교가 주는 슬픔을 직접 경험해 봤고, 얼마나 절망적으로 내 삶을 갉아먹는지 잘 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이제 자신의 삶이 "꽤 괜찮은 해피엔딩을 향해 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가 말하는 해피엔딩이란 해외 유학을 거쳐 교수가 되는, 사회가 규정한 삶의 모양이 아닌 희망을 놓지 않는 삶이다.
"뭐가 보여서가 아니라, 삶의 모든 요소가 이게 끝이라고 말하고 있을 때도 그것을 뒤집어 보는 것, 그게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희망의 힘을 얕잡아 보지 마세요."
꽤 괜찮은 해피엔딩
- 이지선 지음
- 문학동네 발행
- 248쪽
-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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