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성 정책의 기획·종합, 여성의 권익 증진 등 지위 향상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현행 정부조직법 중 여성가족부의 역할을 규정한 조항(제41조)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조만간 대표발의하겠다고 예고한 '여가부 폐지를 위한 원포인트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이 조항은 통째로 삭제될 예정이다.
권 원내대표가 준비한 개정안 초안에는 41조 대신 "법무, 행안 또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승계한다"는 문구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여성'을 지운 것이다. 권 원내대표는 뭐가 그리 급해서 개정안을 이토록 허술하게 만든 걸까.
여성부는 2001년 신설됐다. 그사이 '여성의 권익 증진 등 지위 향상을 위한 여성 정책'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됐으면 좋으려만, 객관적 지표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각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기회 등을 조사해 발표한 지난해 '성 격차 지수'에서 한국은 156개국 중 102위에 머물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하는 성인지 통계를 보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은 24.5%에 그치고, 기혼 여성의 가사 활동 시간은 기혼 남성의 4.1배에 달한다. 직장 내 성차별 수준을 평가하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유리천장 지수'를 봐도 한국은 1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그러나 이러한 순위와 통계가 가리키는 참담한 현실을 외면했다. 성평등 이슈는 오직 득표 전략으로 활용됐다.
윤 당선인은 올해 1월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페이스북에 올려서 성평등에 거부감을 느끼는 유권자들을 기쁘게 했다. 대선 후엔 "여가부 폐지가 6·1 지방선거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수용해 새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 넣지 않았다. 공약 파기에 분노한 청년 남성 지지층이 흔들릴 조짐을 보이자 대통령직인수위는 다시 여가부 폐지를 약속했다. 권 원내대표는 여가부 폐지법을 서둘러 냈다. 호떡 뒤집듯 하는 과정에서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민주적 절차도, 납득할 만한 철학도 없었다.
윤 당선인 측의 젠더 인식은 더 깊은 걱정을 낳았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지난 1일 대통령 비서실 인선 브리핑에서 "여성과 청년 수석비서관은 왜 거의 없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인구, 아동, 가족 부문은 사회수석실에서 담아낼 것"이라고 답했다. 여성 문제를 인구와 출산의 문제로 보는 인식을 은연중에 드러낸 셈이다.
윤석열 정부 내각과 대통령 비서실에선 여성이 배제됐다. 6일까지 발표된 국무위원 19명 중엔 3명(15.8%)뿐이고, 대통령실 수석급 이상 참모(10명) 중엔 단 한 명도 없다. 이 저조한 숫자가 윤 당선인이 없다고 단언한 '구조적 성차별'의 결과이자 원인이다. 그리고 여가부 폐지를 지금처럼 졸속으로 추진해선 안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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