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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에 돌봄시설서 92세 노모 집으로… 발달장애인 ‘老老돌봄’ 우울한 어버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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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에 돌봄시설서 92세 노모 집으로… 발달장애인 ‘老老돌봄’ 우울한 어버이날

입력
2022.05.07 04:20
수정
2022.05.07 20:1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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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앞둔 발달장애인의 시름>
재활시설 정년퇴직 후 돌봄시설 연계 끊겨
구순 넘은 부모·고령 형제자매에 돌봄 의탁
"효도는커녕 부담만…" 가족들도 막막한 심정
"발달장애 특성 맞춘 노인요양시설 신설 필요"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강화도우리마을' 직업재활팀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들이 커피찌꺼기로 만든 연필심을 조립하고 있다. 강화도우리마을 제공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강화도우리마을' 직업재활팀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들이 커피찌꺼기로 만든 연필심을 조립하고 있다. 강화도우리마을 제공

"집에 가면 심심해요. 밖에 돌아다니는 게 더 좋아요. 이제 집에 가면 내가 어머니를 돌봐드려야 하는데…"

인천 강화군의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강화도우리마을'에서 21년째 일하며 돌봄을 받고 있는 지적장애 3급 이진성(가명·59)씨. 지난달 28일 이곳에서 만난 이씨가 동료들과 커피찌꺼기로 만든 연필심을 조립하다가 이처럼 걱정을 쏟아낸 이유가 있다. 만 60세가 되는 내년 6월 정년퇴직을 하면 92세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는 서울 본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노모를 돌볼 일을 염려하지만, 막상 그가 가정으로 돌아간다면 더 큰 돌봄 부담을 져야 할 쪽은 이씨 가족이다. 특히 여동생이 직장에 가 있는 동안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가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는 아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가족들은 걱정이 크다. 지금도 이씨는 주말마다 가족과 지내려 본가에 가지만, 가족과 외출하기가 마땅치 않아 혼자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버이날이 있는 이번 주말(7~8일)도 상황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이씨 가족들은 이씨가 완전히 귀가할 1년여 뒤를 떠올리며 조용히 한숨을 내쉴지도 모른다.

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00년 대한성공회 김성수 주교가 설립한 강화도우리마을에선 지난해부터 정년퇴직하는 발달장애인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돌봄 서비스를 계속 받을 수 있는 시설에 입소하기란 매우 어렵다. 노인요양보호시설은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몸이 불편해 노인요양등급 판정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장애인 거주 시설 역시 정부의 이른바 '탈시설 정책' 기조 때문에 신규 입소는 기대하기 쉽지 않다.

결국 이씨처럼 특별히 아픈 곳이 없는 노령 발달장애인은 원 가정으로 돌아가 역시 고령인 부모나 형제자매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 구순 부모가 환갑을 넘긴 장애 자녀를 건사해야 하는 '노노(老老) 돌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가 아니면 누가 돌보나'… 발달장애인 보호자 30% '미래 걱정'

지난해 6월 강화도우리마을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정혜인(61)씨의 정년퇴직 기념식에서 정씨와 가족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우리마을 제공

지난해 6월 강화도우리마을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정혜인(61)씨의 정년퇴직 기념식에서 정씨와 가족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우리마을 제공

부모가 연로해 돌아가셨다면 형제자매가 발달장애 가족 돌봄 부담을 이어받는다. 15년 전 별세한 부모님을 대신해 발달장애인 정혜인(61)씨를 돌보고 있는 맏언니 정경숙(69)씨와 형부 권석봉(72)씨는 최근 언니 정씨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걱정이 커졌다. 정씨는 최근 당뇨와 고지혈증 진단을 받고 기력이 떨어진 터라 동생을 언제까지 돌봐줄 수 있을지 막막한 상황이다.

첫돌 무렵 심한 열병을 앓은 뒤 지적장애를 갖게 된 동생에게 정씨는 줄곧 언니이자 엄마 노릇을 해왔다. 정씨는 "동생이 당뇨가 있는데 혼자서는 식사량을 조절하지 못해 옆에서 식사도 챙겨주고 약도 먹여야 한다"며 "내가 몸이 아파 누워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동생 돌보기가 버거워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혹여 내 딸들에게까지 이모를 돌보는 일이 이어질까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난 남편을 대신해 지적장애 3급 시동생 신말순(60)씨와 함께 사는 황숙희(74)씨 또한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동생을 돌보는 일이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황씨는 "최근엔 유달리 의사소통도 어려워졌다"며 "(신씨가) 남의 물건을 감추는 습관이 있어서 돌보는 사람에게 매라도 맞을까봐 시설에 보내는 것도 꺼려진다"고 말했다.

지난 3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2021년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보호자는 이들을 돌볼 때 겪는 어려움으로 ‘장애인 당사자의 미래에 대한 걱정’(29.4%)을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으로 ‘보호자(또는 가족)의 정신적 스트레스’(19.1%), ‘보호자의 육체적 피로, 건강 악화’(17.1%), ‘보호자 직업 활동에 지장’(4.7%) 순으로 응답률이 높았다. 이정은 강화도우리마을 사무국장은 "아기가 있는 집은 생활이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발달장애인이 있는 집도 비슷하다"며 "많은 보호자들이 나이가 들면 덩치도 크고 힘이 세진 발달장애인을 돌보기 버거워하신다"고 설명했다.

노령 발달장애인 받아줄 시설 없어… '전담 요양시설 신설' 법령 필요

발달장애인은 인지와 의사소통 장애로 자립 생활이 어려운 터라 장애수당과 같은 경제적 지원보다 가까운 사람의 돌봄을 더욱 필요로 한다. 특히 신체장애보다 때리기, 소리 지르기 등 과잉행동이 더 문제인 발달장애인의 특성상 이들의 행동을 잘 이해하고 통제하는 주변인 도움이 필수적이다.

가족들은 복지 제도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노인요양등급을 받지 못한 노령 발달장애인을 전담할 거주시설은 없다. 강화도우리마을은 정년퇴직 후 노노돌봄 문제를 겪을 발달장애인 가족을 위해 2018년부터 발달장애 노인 전문시설을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으나 보건복지부의 인허가를 받지 못해 잠정 중단한 상태다. 복지부는 현행 장애인 시설 기준에 맞지 않아 인허가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관계자는 "노령 발달장애인을 위한 요양시설을 건립하기 위해선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며 "장애인들의 탈시설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하면서 해당 내용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노령 발달장애인 돌봄 제도 신설을 서둘러야 할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과거와 달리 발달장애를 포함한 장애인들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돌봄 공백도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집계한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 발달장애인은 2만3,746명으로 전체 발달장애인의 9.3%였다. 2017년 7.5%에서 4년 새 2%포인트 가까이 늘어날 만큼 가파른 상승세다. 김현승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위원은 "발달장애인이 요양등급 판정 검사를 받아도 비장애인을 상정해 설계된 검사인 탓에 등급 탈락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의사소통과 인지에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인 고유의 특성에 맞춘 시설 건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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