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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물 예찬

입력
2022.05.08 22:00
수정
2022.05.09 10:0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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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을 이겨내고 나온 쑥, 냉이, 달래 등 봄나물은 영양분이 풍부하고 몸에 생기와 활력을 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혹한을 이겨내고 나온 쑥, 냉이, 달래 등 봄나물은 영양분이 풍부하고 몸에 생기와 활력을 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거 한번 맛봐요. 서울 사람은 없어서 못 먹고 몰라서 못 먹는 귀한 나물이니까."

텃밭 주변의 영아자를 조금 뜯어다가 겉절이를 만들어냈더니 아내가 맛있다며 이름을 묻는다. 나는 대답 대신 아내를 데리고 텃밭으로 가 직접 영아자를 보여주었다. 어린 영아자는 망초와 비슷해 보이는데 잔털이 없고 줄기를 꺾으면 하얀 진액이 나온다. 사실 매년 일러줘도 아내는 식물 눈이 어두운지 여전히 냉이와 지칭개를 헷갈려 한다.

텃밭 가꾸는 사람에게 4월 말 즈음은 1년 중에서 가장 바쁠 때다. 고구마, 고추, 호박, 오이 등 본격적인 텃밭농사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고구마 두 단, 고추 40수를 비롯해 60평 텃밭을 이맘때 모두 채워야 한다. 이즈음이 바쁜 이유는 또 있다. 계곡의 돌단풍 꽃이 지고 냉이 뿌리에 심이 생기면 온갖 봄나물이 일제히 산과 들을 뒤덮기 때문이다. 홑잎나물, 고추나물, 다래순, 두릅, 돌나물, 미나리, 원추리 등등 이름을 헤아리기도 어렵다. 물론 한 그루당 조금씩만 채취하고 땅두릅, 눈개승마, 산마늘 같은 귀한 나물은 몇 년 전 농막 뒤 경사지에 100촉씩 구입해 심어두었다. 이렇듯 땅은 혼신을 다해 모든 걸 내주건만, 우리네 인간만 자기 것 챙기느라 도덕도 양심도 나 몰라라다.

텃밭이 있는 곳은 경기도 가평에서도 한참 들어가는 오지 산자락이다. 야생화 이름밖에 모르던 내가 봄나물에 관심이 생긴 것도 7년 전쯤 이곳에 텃밭과 농막을 마련하고부터였다. 냉이, 쑥 외에 낯선 식물들이 많이 자라는데 어떤 것이 나물이고 어떤 것이 독초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아홉 살이 되기 전에 나물 서른세 가지는 익혔다는데, 20년 이상 집밥을 차렸다는 늙은이가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열심히 묻고 찾아본 덕에 주변 나물 정도는 조선시대 꼬맹이만큼은 구분이 가능하다.

봄나물이 오이, 호박, 배추 등 재배식물보다 비타민, 미네랄 등 영양소가 월등하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다. 겨우내 뿌리와 줄기에 양분을 비축해야 했을 테니 왜 아니겠는가. 그래도 내가 산나물을 고르는 기준은 무조건 맛과 향이다. 무엇보다 아내의 입맛에 맞아야 한다. 그 덕에 쓴맛의 민들레, 씀바귀뿌리, 곰보배추는 일찌감치 목록에서 떨어져나가고, 돌단풍, 망초도 더 이상 식탁에 오르지 않는다.

나물요리가 사찰음식에서 발달했기에 오신채(五辛菜)를 사용하지 않는다지만 냉이, 달래처럼 대부분의 봄나물이 맛과 향이 독특해, 집간장이나 집된장 정도로 재료 자체의 맛을 즐기는 편이 좋다. 서양의 차, 샐러드 문화와 달리 우리나라는 무치고 지지고 볶고 튀기는 등 나물을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나도 이맘때면, 냉이, 두릅, 전호, 영아자는 데쳐서 얼리고, 머위, 엄나무순 등은 장아찌를 만들고, 다래, 눈개승마는 말려 묵나물을 만들어둔다. 채소 구하기가 어려운 겨울을 위한 비상식량인 셈이다. 봄의 맛과 향에 빠진 이후의 습관이 그렇다.

텃밭 점심식사를 위해 겉절이 외에, 땅두릅을 데치고, 다래순과 고추나물을 데쳐 집간장, 들기름에 무치고, 영아자, 전호, 왕고들빼기 잎을 텃밭 상추와 함께 내놓았다. 아내가 나보고 방랑식객 같다며 좋아한다. 그 경지에 이르려면 적어도 나물 아흔아홉 가지는 구분해야겠지만 아내의 칭찬은 늘 기분이 좋다. 봄이 나물과 함께 익어가고 있다.


조영학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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