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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대한 새로운 설명…"뇌세포들의 투표가 지각을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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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대한 새로운 설명…"뇌세포들의 투표가 지각을 결정"

입력
2022.05.05 15:1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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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컴퓨터를 프로그래밍하거나 아이스크림을 만들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이 둘은 최근에 발명된 것이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뇌가 범용 학습 방법에 의존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중략) 어떤 것이라도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은 뇌가 보편 원리에 따라 작용해야 가능하다.

제프 호킨스

오늘날 신경과학자 대다수는 뇌에서 고차원 사고를 담당하는 부분(신피질)이 플로 차트(flow chart)처럼 작동한다고 본다. 눈이나 귀처럼 감각기관을 통해서 입력된 정보가 뇌의 한 영역에서 다음 영역으로 지나가면서 단계별로 처리된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시각 정보 중에서 선이나 가장자리를 탐지하는 영역(A)이 있고 여기에 다른 정보를 담당하는 영역들(B, C)가 차례로 있다는 식이다. 커피잔에서 반사된 빛이 전달한 정보는 A, B, C를 차례로 거치고 뇌는 마침내 잔의 완전한 형태를 인식한다. 이것은 최근 50여년간 학계에서 통용되는 주류 이론이었다.

핸드헬드 컴퓨팅(초소형 컴퓨터 개발) 분야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진 신경과학자 제프 호킨스는 최근 국내에 출간된 저서 ‘천 개의 뇌’에서 통념에 도전한다. 그는 신피질의 모든 부분이 동일한 원리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시각이나 촉각뿐만 아니라 언어나 학문처럼 고차원 사고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지능으로 간주하는 모든 활동이 신피질에서 동일한 원리(알고리즘)로 처리된다는 이야기다. 신피질은 인간이 지각한 세계를 정리하는 일종의 좌표 체계인 ‘기준틀’을 수없이 만들어내고 저장한다. 기준틀 수천 개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지적 활동이 이뤄진다.


신피질은 뇌에서 가장 바깥쪽 부분을 말한다. 냅킨을 작은 컵에 넣었을 때처럼 주름이 잡혀 있다. 이데아 제공

신피질은 뇌에서 가장 바깥쪽 부분을 말한다. 냅킨을 작은 컵에 넣었을 때처럼 주름이 잡혀 있다. 이데아 제공


포유류에게만 존재하는 신피질이 지능 기관이라는 사실은 신경과학계에서 널리 인정받는다. 신피질은 감각뿐만 아니라 언어와 수학, 철학과 같은 추상적 사고를 모두 처리한다. 신피질은 신경세포로 구성된 뇌의 가장 바깥쪽 층으로 뇌를 묘사한 그림에서 흔히 보이는 주름이 잡힌 부분이다. 인간의 신피질은 특히 커서 뇌의 전체 부피에서 70%를 차지한다. 신피질을 펼치면 커다란 냅킨처럼 보이는데 두께는 2.5mm 정도다. 호킨스에 따르면 신피질의 기본 단위(지능의 기본 단위)는 ‘피질 기둥’으로 신피질 표면에서 피질 기둥 하나가 차지하는 면적은 약 1㎟다. 이러한 피질 기둥 15만 개가 신피질 두께 전체에 걸쳐서 수직 방향으로 촘촘하게 늘어서 있다.

신경과학계의 주류 학설은 신피질이 수십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고 저마다 다른 정보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호킨스는 동의하지 않는다. 일부 영역이 특정 정보를 집중적으로 처리하고 플로 차트처럼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신피질 어느 영역을 파고들더라도 세부 구조는 대체로 똑같기 때문이다.

호킨스는 여기서 급진적 주장을 내놓는다. 이에 따르면 피질 기둥들은 어떤 정보든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한다. 구체적으로 피질 기둥은 인간이 관찰하는 모든 대상에 대해서 수많은 기준틀을 만들고 기준틀들은 서로 연결돼 작동한다. 개중에는 공간상에서 물체의 위치를 정의하는 종류도 있다. 예컨대 인간이 커피잔을 만질 때 뇌는 어떤 촉감을 느낄지 예측한다. 그것은 손가락이 잔으로부터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인식하는 신경세포들이 있다는 뜻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신피질이 의자에 고정된 기준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호킨스는 “내가 의자를 빙 돌리면 기준틀도 의자와 함께 빙 돈다. 의자를 뒤집으면 기준틀도 뒤집힌다. 기준틀은 보이지 않게 의자에 들러붙은 채 그 주위를 빙 두르고 있는 3차원 격자로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기준틀은 수십 만 개에 이른다. 손가락뿐만 아니라 입술이나 손바닥이 잔에 닿을 수도 있다. 신피질은 잔을 기준으로 잔에 닿는 모든 신체의 상대적 위치를 알아야 한다. 기준틀은 여러 개일 수밖에 없다. 뇌의 어느 한 부분이 플로 차트처럼 작동해서 정보를 처리한다는 주류 학설과는 다른 설명이다. .

기준틀은 물리적 대상뿐만 아니라 추상적 사고나 지식을 처리할 때도 작동한다. 기준틀은 피질 기둥이 모든 종류의 지식을 조직하고 저장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호킨스는 “우리가 아는 모든 사실은 기준틀의 한 위치와 짝지어진다. 역사 같은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역사적 사실들을 적절한 기준틀의 위치들에 배정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호킨스는 뇌를 촬영한 기능자기공명영상(fMRI)을 근거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새들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새로운 새를 상상하도록 지시했을 때, 피험자들이 마음속으로 자신의 집 지도를 돌아다니는 것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마음속에서 새들의 지도를 ‘돌아다녔다’는 사실이 fMRI 정보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천 개의 뇌. 제프 호킨스 지음ㆍ이충호 옮김ㆍ이데아 발행ㆍ384쪽ㆍ2만원

천 개의 뇌. 제프 호킨스 지음ㆍ이충호 옮김ㆍ이데아 발행ㆍ384쪽ㆍ2만원


또다른 중요한 주장은 뇌에서 지식이 분산돼 있다는 점이다. 뇌는 인간이 지각하는 세계를 기준틀을 이용해 모형으로 만들어 저장한다. 인간은 커피잔이 무엇인지 알려고 잔에 관련한 사실을 모두 외우는 것이 아니라 잔을 구성하는 부분들을 모아서 모형으로 만들어 뇌에 저장한다. 이러한 ‘세계 모형’은 하나가 아니다. 호킨스는 인간이 잔을 잡는 순간, 촉각 영역에서만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모형이 활성화된다고 설명한다. 잔의 다양한 특질에 대해서 피질 기둥들마다 모형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눈앞에 특정한 잔 하나가 놓여있다고 인식할까? 호킨스는 피질 기둥들이 투표를 한다고 설명한다. 수백 개의 모형은 동일하지 않지만 피질 기둥들이 투표를 통해서 합의에 다다른다. 피질 기둥들이 저마다 내놓은 다양한 가능성 가운데서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은 추측이 다른 추측을 억누르고 결국 전체 네트워크가 하나의 답에 이른다. 신피질로 입력되는 다양한 정보가 뇌에서 잔 같은 대상을 지각하는 단일한 장소로 수렴된다는 주류 학설과 다른 설명이다. 호킨스가 자신의 이론을 ‘천 개의 뇌’라고 이름 붙인 이유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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