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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힘든 마라톤은 왜 뛰나요'… 더 나은 삶 위한 고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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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힘든 마라톤은 왜 뛰나요'… 더 나은 삶 위한 고난에 대하여

입력
2022.05.05 19: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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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 교수 폴 블룸 신간 '최선의 고통'

케냐의 페레스 제프치르치르가 지난달 1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열린 제126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여자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감격에 겨워하고 있다. 고통의 마라톤은 완주 후엔 쾌감으로 바뀐다. 보스턴=AFP 연합뉴스

케냐의 페레스 제프치르치르가 지난달 1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열린 제126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여자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감격에 겨워하고 있다. 고통의 마라톤은 완주 후엔 쾌감으로 바뀐다. 보스턴=AFP 연합뉴스

편안함·안락함을 의미하는 덴마크의 '휘게', 배려와 평등을 뜻하는 노르웨이의 '얀테', 적당히 이루는 삶을 추구하는 스웨덴의 '라곰' 등 최근 몇 년 새 쏟아져 나온 '행복론'은 용어는 달라도 골자는 비슷하다. 고통을 피하고 내면의 평화를 좇는 것. 자기만족에서 행복을 찾는 일종의 쾌락주의다.

언어심리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폴 블룸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가 바라보는 행복과 좋은 삶에 대한 생각은 이와 다르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전작 '공감의 배신'에서 '공감에 반대한다'는 도발적 주장을 펼쳤던 그가 이번에는 고통과 쾌락이라는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역설적 심리의 정체를 밝힌다. 신간 '최선의 고통'은 고통에서 얻는 기쁨이 있다는 독특한 행복론을 풀어낸 책이다.

책은 무탈한 삶을 추구하는 쾌락주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쾌락이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고 쾌락적 동기가 일상생활의 전부라면 자발적으로 부정적 경험을 감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해발 8,000m 이상의 에베레스트 등반에 도전하고, 마라톤을 뛰며, 괴로울 만큼 뜨거운 열탕에 몸을 담근다.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출산과 육아는 어떤가. 경제적 부담과 스트레스, 수면부족을 수반하며 삶의 질이 떨어질지언정 아이가 주는 기쁨은 특별하다. 인간이 안락만 추구한다면 설명하기 어려운 삶의 경로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상황을 개선하고 진화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책은 많은 다른 학자들의 생각과 연구 내용을 토대로 고난이 쾌락을 창출하고 강화한다는 명제를 증명해 나간다.

저자는 우선 동기다원주의를 지지한다. 정상적 인간이라면 복수의 독립적 요구를 지닌다고 역설한다. 쾌락적 욕구와 선·공정·정의를 추구하려는 욕구, 그리고 전쟁 참가나 부모가 되는 일처럼 '삶의 의미'와 관련 있는 욕구를 모두 포괄한다는 설명이다. 쾌락과 의미는 양립할 수 있다. 의미 있는 삶이라고 힘겹기만 할 필요는 없고, 때로 스트레스와 어려움을 안기지만 재미있는 활동도 있다. 모든 개인은 다양한 방식으로 충족되는 복잡다단한 욕구 체계를 지녔다.

저자는 고통과 의미 있는 삶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나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 겸 철학자 빅터 프랭클의 연구를 언급한다. 프랭클은 우울증과 자살 연구에서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 중 생존 확률이 높은 사람들은 삶의 목적,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러면서 프리드리히 니체를 인용해 "삶의 이유가 있는 사람은 거의 모든 삶의 양상을 견딜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고난은 몰입의 경험과도 연결된다. 어떤 일에 노력을 쏟는 일은 힘들고 불쾌하지만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노력 자체가 쾌락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최적 수준의 도전은 어느 순간에 완전히 빠져드는 집중의 경험인 몰입 상태로 이어진다. 저자는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를 인용해 몰입을 '좋은 삶'의 한 조건으로 든다.

물론 저자가 이미 불행한 사람에게 더 많은 고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쾌락을 불러오는 고난은 통제할 수 있는 '선택적 고난'이다. 올바른 시기에 올바른 방식으로, 올바른 정도로 맞게 되는 고난이다. 그는 트라우마를 승화시키는 '외상 후 성장'에 대해서는 회의적 입장을 보인다. 삶에서 겪는 나쁜 경험이 깊어진 삶의 의미로 이어진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다.

사실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는 선택적 고난과 비선택적 고난의 경계를 명확히 가르기란 쉽지 않다. 원제인 고통과 쾌락의 '절호점'(The Sweet Spot)을 찾는 일도 독자 개인의 선택으로 남겨둔 채 책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책은 의미 있는 성장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을 풀어내면서 인간 조건의 하나로 고난을 다루는 점에서 일독의 가치는 충분하다. 살아내고, 견뎌내는 삶이 소중함을 감상적 위로의 말이 아닌 논리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난에 대한 탐구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품게 한다. 인생이 뜻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어두운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느껴지는 이들에게 권한다.

최선의 고통·폴 블룸 지음·김태훈 옮김·알에이치코리아 발행·344쪽·1만7,800원

최선의 고통·폴 블룸 지음·김태훈 옮김·알에이치코리아 발행·344쪽·1만7,800원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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