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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그리는 국제연애, 어쩌면 가장 정치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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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그리는 국제연애, 어쩌면 가장 정치적인 이야기"

입력
2022.05.06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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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데이브' 펴낸 서수진 작가
국제연애 경험 바탕한 이야기

'유진과 데이브'를 펴낸 서수진 작가가 지난달 29일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호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글을 쓰는 서 작가는 코로나로 인해 지난 2년간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다. 이번 인터뷰는 국내 매체와의 첫 대면 인터뷰다. 김하겸 인턴기자

'유진과 데이브'를 펴낸 서수진 작가가 지난달 29일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호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글을 쓰는 서 작가는 코로나로 인해 지난 2년간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다. 이번 인터뷰는 국내 매체와의 첫 대면 인터뷰다. 김하겸 인턴기자

연애 자체가 전혀 다른 두 세계의 만남일진대, 이 세계가 각각 다른 인종과 국가에 속한다면? 그 만남은 일대 '격돌'일 수밖에 없다. 하물며 서로의 가족과도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그 사이에서 무수한 충돌이 발생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바로 그렇기에 소설의 소재로는 이보다 안성맞춤일 수 없을지 모른다.

서수진 작가의 '유진과 데이브'는 그런 점에서 왜 '국제 연애'가 소설의 소재로 적합한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2020년 장편소설 ‘코리안 티처’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서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코리안 티처’가 한국어 학당을 배경으로 비정규직 여성들의 노동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호주에서 데이브와 국제연애를 하는 유진이라는 여성을 통해 성차별과 인종차별의 교차점을 들여다본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서 작가는 “한국 속 작은 외국인 한국어학당이나, 국가를 오가며 하는 국제연애나 이방인들의 ‘경계’에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며 “어쩌면 그런 경계에 있는 관계들이 더 정치적인 걸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호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글을 쓰는 서 작가는 코로나로 인해 2년 만에 한국에 왔다.

‘유진’과 ‘수진’이라는 이름의 유사성에서도 알 수 있듯, 소설은 서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바탕이 됐다. ‘코리안 티처’가 실제 한국어학당에서 3년간 일하며 겪은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면, 이번 소설은 서 작가의 호주인 남편인 패트와 사랑하며 느낀 것들이 토대가 됐다. 서 작가는 “그가 나를, 내가 그를 사랑했던 시간이 이 소설을 낳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영어로 번역되기 전까지 남편은 소설을 읽을 수가 없다”며 웃었다.

유진과 데이브. 서수진 지음. 현대문학 발행. 204쪽. 1만3,000원

유진과 데이브. 서수진 지음. 현대문학 발행. 204쪽. 1만3,000원


소설에서 ‘유진’은 한국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여러 번의 좌절을 경험한 끝에 도망치듯 호주로 떠난다. 그곳에서 건축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는 데이브와 만나 연인이 되고, 호주와 한국을 오가며 서로의 가족에게 소개해줄 정도로 깊은 사이가 된다. 그러나 상대방의 가족들을 만나며 끝내 서로의 '선'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연애라는 게 ‘선’을 넘는 행위잖아요. 네 선 안으로 들어가고 싶고, 내 선 안으로 들여오고 싶고, 궁극적으로는 그 선을 무너뜨리고 싶은. 그런데 한국식 연애가 희생과 타협처럼 선을 무너뜨리는 행위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호주 사람들의 경우 오히려 선을 지켜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국제연애에서 그 ‘선’이 특히나 명확하게 보이는 이유죠."

소설에서 유진과 데이브의 갈등이 폭발하는 계기는 혐오 범죄와 인종 차별 같은 거시적인 문제가 아닌, 설거지 방식의 차이다. 데이브의 집에 초대받은 유진은 밥을 먹은 뒤 설거지를 하려는 자신의 행동을 보며 웃는 데이브의 가족들로 인해 수치심을 느낀다. 설거지에서까지 남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상황은 유진이 외국인으로 겪는 '자기 소외'를 보여준다.

“외국에서는 ‘아시아계’ ‘여자’라는 나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의식할 수밖에 없어요. 타인으로부터 인종과 젠더가 전제된 두 겹의 시선을 받게 되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기준이 나에게 있지 않기 때문에 설거지처럼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내 잘못은 없는지 돌아보게 되는 거죠. 그 과정에서 자기 부정과 혐오를 구조화할 수밖에 없고요."

서수진 작가는 현재 시드니칼리지 평생교육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서 작가는 "당분간은 외국이라는 공간,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에 집중한 작품을 써 보고 싶다"고 했다. 김하겸 인턴기자

서수진 작가는 현재 시드니칼리지 평생교육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서 작가는 "당분간은 외국이라는 공간,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에 집중한 작품을 써 보고 싶다"고 했다. 김하겸 인턴기자


데이브가 한국에 오며 둘의 상황은 뒤바뀌지만, 이번에는 ‘한국식 연애’에 끼워 맞춰지지 않는 데이브를 보며 유진은 불편함을 느낀다. 이때의 한국식 연애란, ‘사랑하니까’라는 단서를 달고서 보호와 희생이 당연해지는 연애다.

“외국인과 만나면서 내가 한국에서 배워 온 사랑이 ‘희생적’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특히 가족 관계에서는 희생이 곧 사랑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외국은 일대 일 개인이 만난다는 개념이 더 커요. 어떤 게 정답이라곤 할 수 없겠죠. 다만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데이브가 유진에게 “우리에게는 우리뿐이잖아”라고 말하는데, 그 말이 공허한 한계처럼 들리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우리에겐 우리가 남아 있다라는 뜻으로도 읽히기를 바랐어요.

현실의 수진과 패트는 결국 결혼했다. 소설은 일종의 ‘열린 결말’로 끝맺는다. 유진과 데이브는 함께하는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현실은 동화가 아니니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고 끝낼 수 없듯이, 유진과 데이브의 이야기도 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다음 이야기는 둘의 중년 이야기가 될지도요.”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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