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대화보다 괜찮은 분위기"
원유 증산· 이란 핵 합의 복원 등 논의한 듯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지난달 비밀리에 사우디아라비아를 직접 방문해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37) 왕세자를 만나고 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번스 국장의 사우디 방문은 최악으로 치닫는 양국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3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번스 국장이 이슬람 금식성월 라마단 기간인 지난달 중순, 사우디 남부 도시 제다에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익명의 미국 관리는 "이전에 이뤄진 미국 정부와의 대화보다 나은 분위기였고, 좋은 대화였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미국과 사우디가 입장 차이를 보이는 원유 증산과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 계획) 복원, 예멘 내전 문제 등이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빈 살만 왕세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는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2018년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배후로 빈 살만 왕세자가 지목됐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의 연루 가능성을 단정할 수 없다고 옹호했다. 반면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경선 때부터 왕세자를 공개 비판하며 '살인자' 취급을 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후엔 갈등이 본격화됐다. 빈 살만 왕세자가 지난해 9월 사우디를 찾은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면담을 하다 소리를 질렀다는 사례도 최근 전해졌다. 당시 설리번 보좌관은 석유 증산을 요청하며 카슈끄지 문제를 거론했는데, 빈 살만 왕세자가 말다툼 끝에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 대해 다시는 논의하고 싶지 않다"며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이후 사우디는 미국에 노골적인 반감을 감추지 않았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급등한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사우디가 주도하는 산유국 연합체 'OPEC 플러스(OPEC+)’에 석유 증산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통화 요청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지난달 번스 국장의 방문으로 사우디 왕가의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평가다.
번스 국장은 국무부에서 33년을 일한 외교관 출신으로, CIA 수장이 된 후 국가적 외교 위기 때마다 비밀 회담에 동원되고 있다. 번스 국장은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해 탈레반 지도자와 회담했고, 작년 11월에는 러시아를 찾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군사 행동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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