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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음악축제가 만들어 내는 특별한 마법

입력
2022.05.04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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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지난달 개막한 '제17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서 윤보선 고택을 공연장으로 한 야외 실내악 연주회에 많은 인파가 몰렸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집행위원회 제공

지난달 개막한 '제17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서 윤보선 고택을 공연장으로 한 야외 실내악 연주회에 많은 인파가 몰렸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집행위원회 제공

방역 기준이 달라지면서 음악축제가 눈에 띄게 활기를 띠고 있다. 3월에 시작한 통영국제음악제부터 교향악축제,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이제 막 일정을 공지한 평창국제음악제까지, 관객의 관심도가 확실히 달라졌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멈췄던 시간의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각 축제는 의미 있는 주제와 이에 따르는 정교한 프로그램, 가슴 뛰게 하는 아티스트 조합을 내놓는 등 결코 평범한 무대를 만들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인다.

음악축제는 일반 음악회와 조금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교향악축제나 실내악축제처럼 연주 형태에 집중한 경우 일정 기간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폭넓게 만나게 해준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내한무대라도 단발성의 무대는 인기 프로그램 위주로 구성하다보니 특정 작곡가, 특정 작품을 반복적으로 듣게 된다. 하지만 축제는 기간 내에 겹치는 프로그램이 없고, 평소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곡도 만날 수 있게 구성한다. 수년간 이들 축제를 통해 잘 몰랐던 레퍼토리를 늘려가는 기쁨이 크다. 크로굴스키의 피아노 8중주(2021년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야나체크의 '관악 6중주를 위한 젊음'(2022년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등이 그렇다.

숙박을 동반한 축제의 경우, 짐을 챙길 때부터 관객들은 ‘여행자’가 된다.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환경의 변화가 신선하다 느낄수록, 작은 변화에도 설렐 준비를 하게 된다. 2021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만난 파질 사이의 첼로 협주곡은 아시아 초연 임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전율과 깊은 감동이 자리를 못 뜨게 만들었던 '인생 레퍼토리'가 됐다. 터키 내전을 배경으로 한 음악은 듣는 내내 가슴 저릿한 아픔이 있었다. 공연 후 극장 앞으로 나왔을 때 통영항으로 들어오는 한적한 배를 보며 묘한 감정의 충돌이 일어난 것도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다.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연주를 선보이는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 강원문화재단 제공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연주를 선보이는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 강원문화재단 제공

2018년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만난 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연주는, 지금도 한국 공연사에 길이 남을 충격적인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악장은 클라라 주미 강, 지휘자는 전 KBS교향악단 예술감독이었던 러시아의 거장 드미트리 키타옌코였다. 그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부럽지 않다”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의 명맥을 이을 아시아 유일의 월드 클래스 페스티벌오케스트라” 등의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의 연주가 찬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언제부턴가 세계 각종 콩쿠르는 한국 연주자들이 휩쓸고 있다. 좋은 연주자들이 피아노, 바이올린 등 특정 악기에 편중된 시기가 있었지만, 10여 년 전부터 관악기는 물론 각 악기마다 대단히 뛰어난 연주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플루트, 오보에, 호른 파트 수석, 부수석 자리를 맡고 있고, 심지어 라디오프랑스필하모닉,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등 독일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의 악장은 모두 한국 연주자들이 맡게 됐다. 이들이 여름휴가를 이용해 평창에 모여 한 무대에 서게 된 것은 손열음 감독 시대를 열었던 2018년 평창국제음악제부터였다.

관객들이 그날 들었던 것은 “우리가 모이면 대단한 사건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한국 출신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커다란 포효와 같았다. 이런 오케스트라가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데, 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음악축제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축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2018년부터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맡아 온 피아니스트 손열음(왼쪽), 올해 7월 개막하는 음악제의 주제는 코로나 사태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마스크'다. 강원문화재단 제공

2018년부터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맡아 온 피아니스트 손열음(왼쪽), 올해 7월 개막하는 음악제의 주제는 코로나 사태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마스크'다. 강원문화재단 제공

올해 평창대관령음악제는 7월 2일부터 열린다. 티켓 판매는 4일부터 시작한다. 상반기 음악축제를 놓쳤다면 강원도로 향해보자. 모든 무대가 만족스러울 것이다. 한 번 떠나는 것이 어렵지, 경험해 보면 여태 왜 머뭇거렸나 싶을 것이다. 음악을 잘 몰라도 괜찮다. 양질의 프로그램북도 있어, 열린 공간에서는 감탄하며 재미를 느끼고 마음을 뺏기는 경험도 수월해진다. 축제야말로 클래식 음악을 가장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곳이자, '인생 음악'을 만날 수도 있는 곳이다. 좋은 공연은 만드는 사람도 노력해야 하지만,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을 만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일처럼 왔다 가지 말고 가능하면 2박 이상 머물며 일정 기간 축제에 젖어드는 것도 좋다. 해마다 여름을 지탱해 주는 즐거움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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