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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단식투쟁

입력
2022.05.05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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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바비 샌즈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 신페인당 당사 벽에 그려진 바비 샌즈 벽화. 위키미디어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 신페인당 당사 벽에 그려진 바비 샌즈 벽화. 위키미디어

1976년 9월, 아일랜드공화국군(IRA)과 아일랜드민족해방군(INLA) 수감자들이 옥중 '모포 투쟁'을 시작했다. 영국 정부가 그들의 '특수범주지위', 즉 준전쟁포로 지위를 박탈한 데 따른 반발이었다. 앞서 영국은 IRA 재소자들의 단식투쟁에 굴복, 1972년 그들의 특수 지위를 인정해 죄수복과 강제노역을 면제했다. 그 권리를 다시 박탈한 거였다.

IRA 수감자들이 죄수복 대신 모포를 뒤집어쓰고 다니거나 발가벗고 감방에서 나오기를 거부했다. 교정당국은 요강을 압수해 화장실을 가도록 유도했고, 수감자들은 감방에서 배설해 배설물을 벽에 바르는 '불결 투쟁'으로 맞섰다. 그들의 5개항 요구의 핵심도 죄수복과 노역 거부였고, 그 밖에 일반 재소자와 교육 오락 목적 교류 허용, 주1회 면회 보장 등이었다. 그들의 옥중 투쟁은 가톨릭 교회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며 공화파-왕당파 간의 충돌도 격화했지만, 영국 정부는 물러서지 않았다.

1980년 10월 27일, 공화파 수감자들의 단식투쟁이 시작됐다. 마거릿 대처 체제의 당시 영국 정부는 협상을 통해 53일 만인 12월 18일 단식을 중단시켰으나 정부는 협상안을 거부했고, 이듬해 3월 1일 IRA 전 지휘관 바비 샌즈(Bobby Sands, 1954.3.9~1981.5.5)를 시작으로 순차적인 2차단식이 재개됐다. 북아일랜드 노동자로 10대 중반부터 IRA 임시파(PIRA)에 가담한 샌즈는 1972~76년 불법무기 소지혐의로 5년형을 살았고, 폭탄테러 혐의로 수배 중 다시 체포돼 역시 불법무기 소지 혐의로 14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었다. 그는 단식 중이던 1981년 4월 총선에 출마해 하원의원에 당선되고도 단식을 이어갔고, 교황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샌즈는 단식 66일 만인 5월 5일 숨졌다. 단식은 총 10명의 희생자를 내고 10월 3일 종료됐다. 영국 언론은 대처의 승리를 선언했지만, 5개항 요구는 사실상 모두 수용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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