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지난달부터 처방전을 일정 기간 내 반복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리필 처방전’ 제도가 도입됐지만, 일부 의사들의 반발이 계속돼 정상 운영에 차질을 빚는 것으로 나타났다.
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리필 처방전은 증상이 안정돼 있고 진찰 없이 투약을 계속해도 문제가 없다고 의사가 판단한 환자에게 발행된다. 의사가 사전에 지시한 기간 이내에 최대 3회까지 같은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 비슷한 제도는 영국, 프랑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州) 등 여러 나라에서 실시 중이다.
매번 같은 약을 타기 위해 병원에서 형식적인 진찰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도입을 환영한다. 일본 트렌드리서치가 지난 3월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약이 있는 사람의 70%가 리필 처방을 원한다고 응답했다.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일본 정부는 국비지원 기준으로 110억 엔(약 1,069억 원) 정도의 의료비 억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도입된 지 한 달이 지난 현재 이 제도는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환자의 상태와 무관하게 모든 환자에게 리필 처방전의 발행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개인병원이 다수 존재한다. 제도 도입에 반대하며 “원칙적으로 실시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지역 의사회도 있다. 최근 한 달간 리필 처방전을 갖고 온 환자가 한 명도 없는 약국도 많다. 반복 가능 여부를 표시하도록 돼 있는 공란이 인쇄 당시부터 선이나 기호로 지워져 있는 처방전이 들어오기도 한다.
의사들은 환자에 대한 책임은 의사가 지기 때문에 반드시 진찰을 하고 상태를 본 뒤에 처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환자가 처방전 반복 사용을 원할 때 의사의 진찰이 필요한지 여부는 약사가 판단하게 되는데, 약사의 역량을 충분히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하지만 의사들이 반대하는 실제 이유는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다. 건강보험조합연합회의 2019년 추계에선 만성질환으로 장기간 같은 약을 처방받는 환자의 재진료와 처방전 발급료가 총 692억 엔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서 리필 처방전이 보급되면 이 중 50%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됐다.
니혼게이자이는 “고령화로 의료비가 해마다 불어나는 데 효율화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환자의 병리에 상관없이 처방전 반복 사용을 거부하는 진료소가 잇따라 정부가 대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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