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호족 인디언의 말 중엔 이런 것이 있다. “당신이 세상에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겠지만 당신은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 삶의 도(道)를 알려주는 간명한 말 같지만, 과연 죽기 전 얼굴에 ‘스마일’을 띄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김중혁 작가의 소설집 ‘스마일’은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관찰하는 책이다. 이를 통해 불가해한 죽음과 앞선 삶까지 함께 이해하려 한다. 김 작가의 다섯 번째 소설집이자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이후 7년 만의 신작 소설집이다.
7년이란 느슨한 시간 동안 쓰였지만 책에 실린 다섯 개의 단편들은 하나의 연작처럼 읽힌다. 등장 인물들이 하나같이 어딘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각 비행기(‘스마일’), 섬(‘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 ‘왼’), 자율주행 자동차(‘차오)’, 버스(‘휴가 중인 시체’)에 갇혀 있다. 이곳에서 마약을 밀수하고, 왼손잡이 원시 부족을 관찰하기도 하고, 자신이 저지른 죄를 끊임없이 직시하기도 한다. 공간으로부터 촉발된 ‘상황’이 인물들의 ‘행동’을 이끌어내고 이야기는 전진한다.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문학과지성사에서 만난 김 작가는 “처음부터 소설집으로 엮였을 때를 구상하며 단편을 써나가는 편”이라며 “이번 소설집에서는 갇혀 있다는 설정이 인물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관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탐정, 우주비행사, 스탠드업 코미디언… 등장인물의 독특한 직업은 김 작가의 전매특허 중 하나다. 이번 소설집도 예외는 아니다. 몸속에 마약을 넣고 운반하는 스왈로어, 건물 안전성 평가원 등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소설가’다. 보통 소설가는 작가 자신을 투영할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직업이지만 정작 김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소설가를 등장시킨 것은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일부러 소설가 인물을 피했어요. 픽션과 작가는 분리돼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요새는 조금 바뀌었어요. 이렇게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거짓말을 매력적으로 해야 하는 이 직업은 과연 뭘까 생각하게 돼요. 예전에 고층빌딩에서 유리가 떨어져 사람이 죽은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 얼마 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기사를 봤어요. 실제와 실제 아닌 것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더군요.”
‘실제와 실제 아닌 것의 차이’가 사라지는 경험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해서도 했다.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실제 ‘갇힘’을 경험하게 됐다. 사람들과 교류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감정의 요동이 컸고, 이는 자연히 소설에 영향을 미쳤다. 앞선 책들과 비교해 유머는 줄어들고 비관적 전망은 늘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죽음에 대한 사유가 한층 더 깊어진 것도 눈에 띈다. 김 작가는 “죽음이란 주제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여전히 모르겠어서 계속 다루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소설에서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마음껏 쓸 수 있으니까” “소설이야말로 생명 연장의 꿈이 실현되는 것"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김 작가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있는데, 과연 그럴까요?”라고 덧붙였다. “우주의 긴 역사 안에서 창작으로 무언가를 남긴다는 게 하찮은 일 같아요. 그렇다면 쓰는 과정 중에 즐거워야 하는 거 아닐까요?”
걸작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사는 동안 즐겁기 위해 쓰는 것이야말로 2000년에 데뷔해 22년간 써온 김중혁 문학의 원동력이다. 활발한 방송 활동으로 대중과 소통했지만, 여전히 ‘상수’는 소설이다. 올해로 만 50세가 된 지금도 그는 '여전히 탐구 중’이다. 죽기 전 어떤 표정을 지을 것 같냐는 질문에, “열심히 관리했는데 이대로 죽긴 억울하다”(웃음)고 농담으로 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웃는 얼굴로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하겠죠. 하지만 대개는 사는 게 너무 바빠서 그런 생각을 할 시간도 없어요. 사람들이 바빠서 하지 못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대신하는 게 소설가 아닐까요? 답에 대한 고민은 아직 더 해봐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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