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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의 좌절

입력
2022.04.29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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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수에게 더 높은 평가 받은 정치인
증오의 진영 대결 넘는 '제3의 길'
끝내 배신자 프레임에 발목 잡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국민의힘 경기지사 경선에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유승민 전 의원. 사진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모습. 뉴시스

국민의힘 경기지사 경선에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유승민 전 의원. 사진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모습. 뉴시스

유승민 전 의원은 적수에게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정치인이다. 지난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주요 주자들이 국민의힘 후보로 유 전 의원이 나오는 게 가장 까다롭다고 말했던 건 역선택을 유도하려던 게 아니었다. 상대 진영을 교란하고픈 마음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당시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추미애 전 법무장관을 뽑겠다고 한 발언과는 차원이 달랐다.

6·1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에선 유 전 의원이 경기지사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데 대해 안도하는 분위기다. 경기지사 선거를 준비하는 민주당 관계자의 말은 이랬다. “유 전 의원이 나왔다면 선거 프레임 짜기가 너무 어려웠을 것이다. 이재명 전 경기 지사의 정책에 대해 무조건 반대를 한 게 아니라 일산대교 무료화, 지역화폐 등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김은혜 의원은 콘텐츠도 없고 극우적 발언도 많이 했기 때문에 각을 세우기가 쉽다.”

쉽게 말해 김은혜 후보에 대해선 기존의 선명한 진영 프레임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얘기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지사 후보 확정 직후부터 반(反)이재명과 대장동을 기치로 든 김 후보에 맞서 김동연 민주당 후보 캠프도 ‘윤석열 아바타’ ‘국정 초보’ 등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네거티브 공방전의 진영 간 세대결로 선거가 진행되면 경기는 민주당에 유리하다. 신도시 확대로 민주당 핵심 지지기반인 40대 인구 비중이 16.92%(올해 3월 기준)로 가장 높다. 진영 싸움으로 치러진 대선에서도 이 전 지사가 윤석열 당선인을 5%포인트 앞섰다.

반면 유 전 의원이 후보가 됐다면 민주당의 공격 카드가 마땅찮고 김동연 후보의 경제전문가 장점도 희석된다. 유 전 의원의 발목을 잡은 ‘배신자 프레임’은 민주당이 활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선거는 경기 발전을 위한 정책 대결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 대선 당시 민주당 주자들이 유 전 의원을 가장 어려운 상대로 꼽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고정 지지층을 쉽게 동원할 수 있는 혐오의 프레임을 쓰기 어려워 말 그대로 실력 대 실력으로 붙어야 하는 상대였다.

선거 정치에서 가장 손쉬운 수법이 증오심을 자극하는 갈라치기와 상대 헛발질을 기다리는 반사이익의 정치다. 정책 대안 없이도 고정 지지층을 동원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편한 길이다. 정치인들이 욕을 먹어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즉각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큰 정책 어젠다 없이 온갖 네거티브로 점철된 지난 대선만 봐도 그렇다. 만약 유 전 의원이 후보로 나왔다면 보수층의 결집력이 떨어졌을 수 있지만 그에 비례해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도도 약화했을 것이다. 민주당이 유 전 의원을 상대로 증오의 프레임을 사용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유 전 의원은 상대를 악마화하는 진영 대결의 한국 정치판을 바꿀 수 있는 카드였다. 2015년 집권여당 원내대표로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중부담·중복지를 제안했던 것은 한국판 제3의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배신자 프레임이란 혐오의 정치 덫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를 무너뜨린 것은 민주당이 아니라 보수 내부였다. 민주당이 가장 어려운 상대로 여겼던 정치인을 보수 스스로 질식시킨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는 민주당에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실력을 키우는 대신 혐오와 선동의 정치 언어에 계속 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 전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불화와 관련해 보수층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데 실패한 것은 결과적으로 그의 그릇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를 중심으로 보수 개혁이 이뤄졌다면 한국 정치의 풍경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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