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포켓몬빵' 여전히 품귀현상
주요 고객으로 떠오른 10대 청소년들
가위바위보, 제비뽑기하는 가게 등장도
"포켓몬빵 있나요?"
요새 가까운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면 으레 들려오는 말이다. 포켓몬빵에 관심 없던 사람도 '하나쯤 사야 하나?'하는 군중 심리가 발동할 정도다.
'포켓몬빵 열풍'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2월 재출시한 이후 벌써 두 달이 넘었지만 품귀 현상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재출시 일주일 만에 150만 개 넘게 팔아치웠다니 말다했다. 그러니 빵을 찾아 동네 편의점을 전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성인들뿐만 아니다. 10대 청소년까지 '띠부씰' 모으기에 동참하며 '보물찾기'에 나서는 형국이다.
온 나라가 포켓몬빵에 빠질수록 편의점이나 마트에선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한다. 출입문에 '포켓몬빵 없음' '포켓몬빵 X' '포켓몬빵 매진' '문의는 업무방해' 등의 문구를 써 붙여놔도 포켓몬빵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물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우리 아이들의 '동심'이 상처를 입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혼자 편의점이나 마트를 방문했다가 "포켓몬빵 없어!"하는 어른들의 차가운 소리에 말이다. 포켓몬빵 열풍이 부른 부작용이라 해야 할까. 그럼에도 동심을 헤아리는 이들은 꼭 있다. 다른 한편으론 길게 이어진 열풍에 판매 노하우가 쌓인 결과일지도.
"엄마, 가위바위보에서 졌어! 어떡해"
경기도에 거주하는 김한수(13·가명)군은 최근 들어 집 근처 편의점에 포켓몬빵을 사러 갈 때마다 가위바위보를 한다. 편의점 주인이 자신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면 포켓몬빵을 살 기회를 주기 때문. 다만 가위바위보는 '단판 승부'. 물량이 부족해 1인당 한 개만 구입이 가능한 데다가 성인뿐 아니라 어린 아이들까지 포켓몬빵을 찾으니 점주가 나름대로 고안해낸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편의점에 갈 때마다 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에 많아야 서너 개 들어오기 때문에 다 팔리고 없는 경우가 많았고, 빵이 들어올 시간에 맞춰 사러갈 수도 없으니 허탕을 칠 때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김군은 요 며칠 하루에 한 번씩 해당 편의점을 들렀다. 그러다 최근에 포켓몬빵이 진열된 걸 보고 점주에게 가위바위보를 제안했다. 하지만 단판 승부의 세계는 씁쓸했다. 김군이 지고 만 것. 편의점에는 3개의 포켓몬빵이 남아있었다. 김군은 집으로 달려가 중학생 형의 손을 이끌고 다시 편의점으로 향했다. 형과 편의점 주인이 가위바위보를 했지만 김군의 형 역시 패했다.
두 형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포켓몬빵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다시 집으로 달려가 퇴근한 아버지를 끌고 해당 편의점에 달려갔다. 김군의 아버지도 편의점 주인과 단판 승부를 벌였다. 아쉽게도 결과는 패배였다. "이렇게 가위바위보 못하는 부자(父子)는 처음 봤다"는 점주의 농담에 김군과 형, 아버지는 껄껄 웃었다고 한다.
이들은 집으로 돌아와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며 서로를 다독였다고. 김군의 어머니 윤모씨는 "우리 세대 때 유행하던 포켓몬빵에 대한 향수를 아이들도 느껴보려고 열풍이 부는 것 같다"며 "우리 가족이 오히려 포켓몬빵으로 추억 하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포켓몬빵 들어오면 연락해 줄게"
서울에 사는 이하윤(10·가명)양은 최근 2주 만에 어렵사리 포켓몬빵 하나를 구입했다. 소위 말하는 '찜' 방식을 통해서다. 집 근처 한 편의점에서 포켓몬빵이 입고되는 시간을 알려줬고, 그 시간에 방문하면 구매할 수 있다는 팁을 줬다.
사실 이양은 그동안 동네 편의점 네 곳을 돌아다녔는데 포켓몬빵이 진열된 것조차 구경하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편의점 점주 및 직원 등 어른들의 모진 말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고. 편의점 문만 열었을 뿐인데 "밖에 써 붙인 거 봐라" "포켓몬빵 없어" 등으로 문전박대를 당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포켓몬빵 없고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 "들어와도 선착순 판매한다" "입고 문의사절이다" 등으로 포켓몬빵을 사러 갈 때마다 속상해했다고 한다. 편의점에선 묻지도 않았는데 아이의 모습만 보고 포켓몬빵을 사러 왔을 거라고 짐작했고, 이양은 입도 뻥긋 못하고 편의점을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찾은 한 편의점에서 뜻밖의 행운을 얻은 것이다. 해당 편의점 직원은 "보통 밤 11시에 입고되니 그때 다시 오라"고 알려줬다. 이양은 엄마와 함께 정시가 되기 10분 전에 편의점을 찾았다. 뒤이어 입고 시간을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차례로 들어와 대기했다. 마치 명품을 사기 위해 백화점 매장 문이 열리기 전에 줄을 서는 '오픈런'처럼.
그러나 20여 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직원은 연락처를 적어달라고 했다. 울상이 된 이양에겐 "전화번호를 적어놓고 가면 연락해 줄게. 빵은 아마 2개 정도 들어올 거야. 네가 젤 먼저 왔으니까 반드시 받아갈 수 있을 거야"라고 귀띔해줬다. 이양은 그제서야 안심했다.
집으로 돌아가 30분을 더 기다린 이양은 이 직원의 연락을 받고 무사히 포켓몬빵을 구입했다고 한다. 이양은 "정말 연락을 줄까 걱정했는데 휴대폰 벨이 울려서 깜짝 놀랐다. '띠부씰' 스티커를 갖게 해준 그 언니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꽝 나와도 계속 도전합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중학생 강혁(15·가명)군은 학교 앞 가게에 가는 재미에 빠졌다. 이달부터 가게 주인이 포켓몬빵을 사려는 학생들에게 '제비뽑기 통'을 내밀고 있어서다.
해당 가게는 지난달까지 포켓몬빵 판매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야말로 먼저 본 사람이 임자였던 것. 주인은 한 사람이 진열된 포켓몬빵을 싹쓸이해도 별 말 하지 않았다.
그러자 학생들이 포켓몬빵 판매 방식에 대해 건의했고 주인은 이를 받아들였다. '제비뽑기'라는 판매 방식도 빵을 주로 찾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학생들은 포켓몬빵을 사려고 가게를 방문한 게 아니어도 꼭 뽑기를 하는 습관이 생겼을 정도라고 한다.
뽑기 종이에는 세 가지 유형의 단어가 쓰여있다. '꽝' '1개' '2개'. 물량이 떨어지기 전까지 하루에 1인당 최대 2개까지만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뽑기라고 만만히 봐선 안 된다. 강군은 사흘 내내 '꽝'만 뽑았기 때문.
강군은 시간이 있으면 등하교 길에 두 번씩 뽑기를 할 때도 있다. 일부에선 포켓몬빵을 사기 위해 편의점 등을 방문하는 자체가 눈치보인다는 반응도 쏟아진다. 하지만 강군과 친구들에게 학교 앞 가게는 '동네 사랑방'처럼 오고 가기 편한 곳이다. 그래서 "포켓몬빵을 사러 가는 건지, 제비뽑기를 하러 가는 건지 모르겠다"면서도 "그래도 신박한 경험이라 놀이처럼 재미있다"고 강군은 말했다.
"동네 마트서 친정식구 대동단결" "편의점 냉장코너 살피세요"
아이들을 위해 포켓몬빵을 사려는 부모들의 노력도 가상하다. 학부모들은 서로 포켓몬빵을 사기 위한 '꿀팁'까지 공유하며 '빵과의 전쟁' 중이다. 포켓몬빵을 획득한 그들만의 노하우를 공개한다.
두 아이의 엄마 최미진(가명·41)씨는 최근 포켓몬빵 6개를 한꺼번에 구입했다. 집에서 5분 거리의 동네 마트에서 행운을 잡은 것이다. 매번 갈 때마다 포켓몬빵을 구경조차 할 수 없어 입고 시간을 물었고, 오후 2, 3시쯤이라는 말에 포기했다. 초등학생 아이가 학교에서 오는 시간인 데다 간식을 챙겨주고 학원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기회가 왔다.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는 날 동네 마트로 향했고, 물류 차량이 들어오는 것을 목격한 뒤 마트에서 대기했다. 하지만 해당 마트에선 하루에 1인당 최대 2개로 구매 제한을 뒀기 때문에 최씨는 '가족 찬스'를 썼다.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친정 부모님과 대동했다. 3명이 2개씩, 총 6개의 빵을 산 것이다. 이득도 봤다. 편의점에서 개당 1,500원인데 마트에선 1,300원에 구입했다고. 최씨는 "포켓몬빵 때문에 친정 식구까지 대동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워킹맘' 전은경(가명·38)씨는 편의점에서 냉동 코너를 꼭 살피라는 '꿀팁'을 줬다. 의외로 포켓몬빵 신제품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이달 초 포켓몬빵을 생산하는 SPC삼립은 망고 크림이나 요거트 크림, 앙버터 등을 담은 냉장 디저트 빵류로 신제품을 출시했다. 이들 제품에도 '띠부씰' 스티커가 들어있다.
전씨는 주변 엄마들에게 관련 정보를 얻은 뒤 편의점 냉장 코너를 집중 공략했다. 그는 "동네 편의점 서너 군데를 돌면 꼭 한두 개의 컵케이크 제품을 살 수 있다"면서 "냉장코너를 잘 살펴보면 행운을 잡을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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