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인간으로 태어나 나의 죽음에 앞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죽음이 있다면 나를 낳아준 이들의 죽음일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의 죽음은 가장 사적인 체험이면서 동시에 가장 보편의 경험일 수밖에 없다.
김혜순 시인에게도 그러했다. 시인은 아버지의 죽음에 이어 2019년 어머니의 죽음까지 잇따라 경험하며 “비탄의 연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하여 가족이란 결국 “작별의 공동체”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김 시인의 새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는 김 시인이 엄마의 상실과 코로나라는 재난을 통과하며 온몸으로 겪은 죽음을 탄식하는 책이다. 국내 시인 중 지난 10년간 해외에 가장 많이 소개됐으며 2019년 캐나다의 그리핀 시문학상, 2021년 스웨덴 시카다상 등 세계적 문학상을 수상하며 동시대 세계 시인으로 우뚝 선 김 시인의 열네 번째 시집이다. 28일 서울 서교동 문학과지성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 시인은 “엄마를 간호하는 동안 잠깐 짬이 나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다”며 “그 시간을 때우며 쓴 시들”이라고 말했다.
40년간 시를 써오며 시인이 ‘엄마’를 시로 쓴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 시는 엄마에 ‘관해서’, 엄마에 ‘대해서’ 쓴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저 사라지고 있는 엄마와 함께 시 한 편 한 편을 생성해 나간 것”이라고 했다. 시인에게 엄마란 “나를 두 번 배신”한 사람이다. “첫 번째는 세상에 죽음을 낳아서/두 번째는 세상에 죽음을 두고 가버려서”다.(‘엄마란 무엇인가’) 김 시인은 “엄마는 저의 과거였는데 돌아가심으로써 나의 미래가 됐다”며 “나에게 삶만 준 줄 알았더니 죽음도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시인은 응급실에 세 번이나 실려갔을 정도로 무척 아팠다. 최근에는 코로나에 걸렸다. 김 시인은 “정신적 고뇌는 서로 소통할 수 있지만 육체의 고통은 나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그런 뒤 세상을 보니 개개인에게 깃들어 있는 슬픔과 고통이 전달되어 왔다”고 했다. 육체적 고통과 개인적 상실을 통과한 뒤 시인이 향한 곳은 ‘사막’이다. 사람을 태우고 난 재의 자리,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이자 작별의 공동체가 함께 만든 시간들이 결국 향하는 곳이다.
김 시인에게 시란 “불행을 더 불행답게 슬픔을 더 슬픔답게 하는” 장르다. 그렇기에 비슷한 상실을 경험한 이들을 위로하거나 치유하겠다는 생각이 없다. 다만 그들의 손을 이끌고 사막으로 향해, 그곳에서 함께 상실을 들여다볼 뿐이다. 그러나 시인과 함께 사막으로 향한 독자들은 곧 느끼게 된다. 그곳의 모래가 몸을 감싸오는 것을. “이 사막의 모래는 뿔뿔이 쓸쓸”(‘사막의 숙주’)하지만, 어쩐지 퍽 안락해 잠시 쉬어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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