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제임스 폭스 '컬러의 시간'
"분홍은 남자아이, 파랑은 여자아이를 위한 색이라는 게 일반적 규칙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미술사학과 교수인 제임스 폭스는 1918년 출간된 육아서 '핑크 또는 파랑?(Pink of Blue?)'의 한 구절을 가져온다. "분홍은 결단력 있고 강한 색이기 때문에 남자아이에게 어울리지만, 파랑은 섬세하고 앙증맞아서 여자아이들에게 더 예쁘게 어울린다"는 내용. '분홍=여아, 파랑=남아'로 굳어진 오늘날 관념이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정반대였던 것이다. 이뿐 아니다. 우리나라와 미국 정치에서 빨강은 보수의 상징이고, 파랑은 진보를 뜻하지만 유럽에서는 반대다.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색의 의미는 제각각이다. "색에는 본래 의미가 없고, 그것을 보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창조"했기 때문이다. 폭스가 8년 넘는 조사와 연구 끝에 써 낸 이 책은 색의 정체를 역사와 과학의 렌즈로 들여다 본다.
책은 빨강은 뜨겁고, 파랑은 차갑다는 식의 진부한 색채론에 머물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기본'색이라 믿었던 7개색(검정·빨강·노랑·파랑·하양·보라·초록)을 대상으로 색이 상징하는 바가 시대와 장소, 사람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색의 인문학이자 문화사, 미술비평, 비교문화론에 가깝다.
책장을 펼치면 미술관의 문을 연 듯하다. 색이 돋보이는 그림과 사진 53점이 실려있다. 미술사학자답게 작품의 탄생 배경과 예술가가 걸어온 삶의 궤적, 작품마다 색이 사용된 방식까지 친절히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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