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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국제사회 지적에도 ‘IQ 69’ 지적장애 말레이 마약사범 사형 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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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국제사회 지적에도 ‘IQ 69’ 지적장애 말레이 마약사범 사형 집행

입력
2022.04.2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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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인권단체 "징역형으로 낮춰야"
귀 닫은 싱가포르, '마약사건 무관용'

지난 26일 사형 집행을 하루 앞둔 말레이시아 마약사범의 모친인 판찰라이 수퍼매니안이 싱가포르 항소법원으로 걸어가고 있다. CNA 캡처

지난 26일 사형 집행을 하루 앞둔 말레이시아 마약사범의 모친인 판찰라이 수퍼매니안이 싱가포르 항소법원으로 걸어가고 있다. CNA 캡처


“우리 아이에겐 장애가 있습니다. 부디 선처해 주세요.”

지난 26일 사형집행정지 신청 재판이 열린 싱가포르 항소법원 법정. 말레이시아인 판찰라이 수퍼매니안은 절박하게 호소했다. 그의 마지막 노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다음 날 마약 밀반입 혐의로 수감 중인 아들 나겐트란 다르말린감(34)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처지였다. "지능지수(IQ) 69에 불과한 아들이 범죄에 이용됐을 뿐입니다." 다급한 판찰라이는 같은 말을 수없이 재판부에 반복했다.

법정 밖에선 나겐트란의 사형에 반대하는 국제인권단체의 집회가 한창이었다. 비슷한 시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도 "사형 집행을 멈추고 징역형으로 감형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말레이시아 시민들은 25일부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위치한 싱가포르 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500여 명의 싱가포르인도 같은 날 홍림공원에서 '사형 반대' 철야 집회를 개최했다.

지난 25일 싱가포르 홍림공원에서 열린 나겐트란 다르말린감 사형 집행 반대 철야 집회 현장의 모습. SCMP 캡처

지난 25일 싱가포르 홍림공원에서 열린 나겐트란 다르말린감 사형 집행 반대 철야 집회 현장의 모습. SCMP 캡처

그러나 싱가포르 정부는 흔들리지 않았다. 항소법원은 판찰라이의 신청을 즉시 각하했고, 교정당국은 27일 오전 예정대로 나겐트란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이미 최종 항소가 2019년에 기각되는 등 법적 판단이 끝난 데다, 지난해 11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나겐트란에 대한 사형 집행이 한 번 연기된 바 있어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였다.

싱가포르 사법부와 행정부는 지금도 자신들의 결정이 옳다고 믿고 있다. 법원은 나겐트란이 2009년 마약을 자국에 밀반입할 당시 범죄의 중대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자발적으로 움직였다고 판단한 상태다. 그의 지적장애가 범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최종 선고 당시에도 "현행법이 개정돼 사형제도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법원은 기존 법체계와 증거 능력에 따라 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예외를 두면 질서가 무너진다"는 굳은 신념을 가진 정부는 판결 이후 정무적 판단 개입을 철저히 배제했다. 마약사범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전 세계 30개국 중 하나인 싱가포르는 15g 이상의 마약(헤로인)을 국내로 반입하다 적발되면 무조건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선 여론에 휩쓸려 나겐트란에게 면죄부를 줄 경우, 사형 집행이 예정된 다른 50명 역시 비슷한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자국민이 해외에서 극형에 처해진 데 대해 안팎에서 반발이 나왔음에도, 특정국의 사법권에 개입하는 것은 주권 침해라고 판단한 듯하다. 싱가포르 정부 역시 이날 나겐트란 사형 집행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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