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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도 '우토로'도 과거 일로 넘기기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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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도 '우토로'도 과거 일로 넘기기엔 아직 이르다"

입력
2022.04.27 19:00
수정
2022.04.27 21:12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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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마이니치신문 기자 나카무라 일성
'우토로 여기 살아 왔고, 여기서 죽으리라' 한·일 출간
재일 조선인 마을 우토로 주민 증언·기록 모은 책
"가장 힘없는 자이니치(在日), 우토로 기억해 주길"
"우토로 주민의 집, 가족 역사 시작된 곳"

'우토로 여기 살아 왔고, 여기서 죽으리라'의 저자 나카무라 일성 작가가 26일 한국일보와 화상으로 인터뷰하고 있다. 나카무라 작가는 "자이니치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산 우토로 주민들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 끝까지 싸웠다"고 말했다. 줌 캡처

'우토로 여기 살아 왔고, 여기서 죽으리라'의 저자 나카무라 일성 작가가 26일 한국일보와 화상으로 인터뷰하고 있다. 나카무라 작가는 "자이니치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산 우토로 주민들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 끝까지 싸웠다"고 말했다. 줌 캡처

"일본의 역사 우경화 흐름 중에도 우토로가 평화·평등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장소가 됐다는 점에서 무척 기쁘다."

일제강점기 교토 비행장 건설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 마을 주민의 증언과 기록을 모은 신간 '우토로 여기 살아 왔고, 여기서 죽으리라'의 저자 나카무라 일성(53) 작가는 30일에 있을 '우토로 평화기념관' 개관에 대해 "우토로의 본질은 토지 문제가 아닌 전후 책임, 역사 인식의 문제임을 드러내는 실물 공간이 생긴 것"이라며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우토로 평화기념관은 강제 퇴거에 맞선 투쟁 끝에 거주권을 지켜낸 우토로 마을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다. 우토로 주민들은 해방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상하수도 시설도 없이 정착해 살다가, 토지 소유주가 주민 퇴거를 위해 제기한 소송에 패소했다. 이후 일본 정부를 향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과 한일 양국 시민단체 지원 등에 힘입어 삶의 터전을 지켜냈다.

기념관 개관에 맞춰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출간된 책은 우토로 주민 구술을 중심으로 이 같은 우토로의 수난사와 투쟁기를 담고 있다. 프리랜서 언론인인 나카무라 작가는 마이니치신문 기자로 재직 중이던 2000년부터 우토로 문제를 취재해 왔다. 그는 26일 화상(줌·Zoom) 인터뷰에서 "지난 20여 년의 취재 분량이 너무 많아 정보를 덜어내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고 집필 과정을 소개했다.

나카무라 작가는 "한국 독자가 막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자이니치(在日·재일 한국인) 문제를 우토로라는 구체적 매개체를 통해 돌아봐 줬으면 한다"면서 "일본과 조국에서 모두 버려졌다고 생각했던 우토로 1세대 주민들이 거주권 투쟁 과정을 통해 조국이 자신들을 기억해 주고 있음을 깨닫고 돌아가셨다는 점도 독자들에게 꼭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토로 여기 살아 왔고, 여기서 죽으리라'의 저자 나카무라 일성씨가 26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 중 우토로 문제를 다룬 자신의 이전 저서를 소개하고 있다. 줌 캡처

'우토로 여기 살아 왔고, 여기서 죽으리라'의 저자 나카무라 일성씨가 26일 한국일보와 화상 인터뷰 중 우토로 문제를 다룬 자신의 이전 저서를 소개하고 있다. 줌 캡처

한국인 어머니를 둔 나카무라 작가는 "우토로의 기억을 발굴하는 일은 가슴속에 흩어져 있던 퍼즐을 맞춰 가는 일이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일본인이 아님을 알았지만 가족 중 누구도 자신이 한국계라고 드러내 놓고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친척 중에는 토건업 등 거친 사업에 종사하며 합법과 위법의 경계를 오가는 이도 있었고, 재일동포 사회에서 생업을 이어가다가도 일본 국적을 취득해 동포 사회를 벗어난 이도 있었다. 그는 "한국 문화를 간직한 채 일본에 정착한 우토로 1세대와 그 2세 거주민들의 대립 양상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내 가족사가 퍼즐처럼 맞춰졌다"고 설명했다. 그가 이번 책뿐 아니라 '교토 조선학교 습격사건'(2018·도서출판 품 발행) 등 자이니치 관련 저술에 꾸준히 매진해 온 것도 그래서다.

최근 자이니치의 삶과 애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환기시킨 드라마 '파친코'의 원작자인 이민진 작가는 한 인터뷰를 통해 "파친코는 집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나카무라 작가가 우토로를 바라보는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일제강점기부터 끊임없이 역사의 굴곡을 겪어 온 우토로인에게 집은 유일하게 정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며 "가족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에 집에 대한 그들의 집념은 강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책 제목으로 삼은 '우토로 여기 살아 왔고, 여기서 죽으리라'라는 문구에도 반영돼 있다. 2000년 일본 대법원 패소 후 퇴거 위기에 처한 우토로 주민들은 이 문구를 포함한 분노의 글귀를 적은 입간판을 세웠다. 나카무라 작가는 "1세대 우토로 주민 중에는 '우토로에서 죽고 싶다'는 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우토로 문제의 본질이 역사 정의의 문제이자 기본적 인권인 거주권의 문제임을 거듭 강조했다.

"'파친코'라는 소설도 그럴 테지만 우토로는 아직까지 '과거'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는 역사입니다. 우토로 주민 거주권은 결국 일본 정부 지원이 아닌 한일 양국 시민의 힘으로 되찾았기 때문에 우토로는 과거 청산의 기회를 내쳐 온 일본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특히 일본 내 조선학교 차별 등은 현재 진행형인 만큼 관련 문제를 계속 써 나갈 계획입니다."

우토로 여기 살아왔고, 여기서 죽으리라·나카무라 일성 지음·정미영 옮김·도서출판품 발행·320쪽·2만5,000원

우토로 여기 살아왔고, 여기서 죽으리라·나카무라 일성 지음·정미영 옮김·도서출판품 발행·320쪽·2만5,000원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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