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으로 떠난 청년경찰...의료진 원망했던 그 어머니가 다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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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으로 떠난 청년경찰...의료진 원망했던 그 어머니가 다시 찾아왔다

입력
2022.05.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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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유수종 소화기내과 전문의

편집자주

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20대 중반의 건장한 청년이 외래로 왔다. 막 경찰에 입문했다고 말하는 청년 뒤로 근심에 찬 얼굴의 어머니가 숨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10여 년 전 그 무렵, 나는 소화기내과 전문의 수련을 마치고 임상교수로서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 의사였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최근에 윗배가 더부룩한 느낌이고 소화가 잘 안 되어서 인근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간에 혹이 있다고 해서요. 나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 확인해 보려고 왔습니다.”

문진 결과 청년은 B형 간염 보유자였으나 젊고, 별다른 증상도 없었기에 간암 검진을 받지 않고 지냈다고 했다. 신체 검진에서는 윗배에 단단하게 만져지는 덩어리가 있었다. 급하게 혈액검사와 CT를 시행하였더니, 혈액에서 B형 간염 바이러스가 매우 많이 검출되었고, CT에서는 간경화에 동반된 간암이 관찰되었다. 안타깝게도 간암은 이미 많이 진행되어 간 전체에 퍼져 있고 혈관을 침범하여 수술이나 간이식과 같은 완치 목적의 치료가 어려운 상태였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보통 교과서적으로는 환자에게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치료 방향을 상의하라고 하지만 이제 막 경찰이 된,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는 청년에게 나쁜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될지 새내기 의사로서 막막했다. 어머니의 슬픈 표정으로 보아서는 이미 이전 병원에서 어느 정도 나쁜 소식을 들은 것으로 짐작은 되었지만 섣불리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어머니, 저랑 먼저 말씀 좀 나누실까요?”

환자를 잠시 진료실 밖에 있도록 한 뒤, 어머니께 환자의 상태를 먼저 알려드렸다. 어머니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숨죽여 오열하며 아들을 살려 달라고 애원하셨다. 다음으로 환자에게도 좋지 못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의외로 환자는 본인의 상태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대신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는 다 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미 간암이 상당이 진행됐기 때문에 환자의 예후는 좋지 않았지만 나는 수술 대신 다른 치료법을 시도해 보기로 결정했다. 환자의 나이가 젊어 신체 능력이 좋고 간기능도 비교적 양호하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경동맥 화학색전술과 방사선 치료를 진행하기로 했다.

‘경동맥 화학색전술’은 암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동맥에 항암제를 투여하고 혈류를 차단해 암세포의 괴사를 유도하는 치료법이다. 하지만 암세포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염증이 장운동을 저하시켜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 환자에게도 부작용이 나타났다. 시술 후 환자는 심한 복통과 발열이 나타났고, 오심과 구토 증상으로 인해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면서 몸상태가 더욱 악화했다. 그러자 ‘암 치료하다가 아들 잡겠다’는 어머니의 원성이 높아졌다. 어머니가 보시기에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아들의 모습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저하된 장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환자가 꾸준히 온찜질을 하고, 기력이 없어도 많이 걸을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러자 힘든 아들을 자꾸 일으켜 세우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어머니와 병실 의료진 간에 잦은 갈등이 생겼다. 하지만 환자는 전신 상태가 악화된 힘든 상황에서도 의료진의 의도를 이해하고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노력에 응답하듯,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의 복통과 발열이 호전되고 식사량은 늘어났다.

그러나 한 번의 시술로 큰 암을 모두 죽일 수는 없었다. 결국 수개월 뒤,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 모두 최선을 다했음에도 환자는 끝내 우리 곁을 떠나갔다. 환자가 사망한 날 어머니는 울부짖다시피 의료진을 원망했다. 젊은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절망과 원망이 비수가 되어 새내기 의사의 가슴에 꽂혔고, 나 역시 슬픔에서 헤어나기가 어려웠다.

얼마 뒤, 외래 환자 명단에서 그 청년의 이름을 다시 보게 됐다. 원망하시던 어머니의 일그러진 얼굴이 떠올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환자의 사망에 대해 무엇인가 항의하기 위해 내원한 것일까. 하지만, 걱정과 달리 외래로 들어오신 어머니는 조용히 사망진단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진단서를 써 드리고 위로의 말씀을 전했는데, 어머니께서 뜻밖의 말씀을 꺼내셨다.

“선생님, 실은 저랑 제 딸도 간염이 있어서요. 앞으로 선생님께서 진료를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말문이 막혔다. 진료를 보시겠다는 것을 막을 수 없겠지만, 꿈을 펼치기 전에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젊은 경찰을 지키지 못했다는 괴로움이 다시 떠오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청년의 어머니와 누님은 간염이 간경화나 간암까지 진행된 상태는 아니었다. 항바이러스 약제를 잘 복용하고 꾸준히 관리해 나가기로 했다. 한때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보호자였지만 이제는 만성 질환을 잘 관리하는 환자가 되어 일상 생활을 건강하게 영위하고 있다.

치료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던 청년 경찰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젊은 환자의 죽음을 겪고, 환자를 떠나보낸 뒤 남은 가족들을 돌보게 되면서 다시 한번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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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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