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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 위기 가습기살균제 조정안… ‘종국성’이 뭐길래

입력
2022.04.27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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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갈수록 환경에 대한 관심은 커지지만 정작 관련 이슈와 제도, 개념은 제대로 알기 어려우셨죠? 에코백(Eco-Back)은 데일리 뉴스에서 꼼꼼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환경 뒷얘기를 쉽고 재미있게 푸는 코너입니다.


"조정금액이 많다거나 종국이 아닐 수 있다는 이유로 기업들이 '억울하다,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는 건, 가해자로서 책임과 도리를 저버리는 것 같아요. 피해자들 아직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못 받았는데... "

26일 김경영(43)씨의 목소리는 몹시 지쳐있었습니다. 김씨는 옥시에서 만든 가습기살균제를 썼다가 2009년 1월부터 지금까지, 13년째 중증 천식을 앓고 있습니다. 이것만 해도 억울할 텐데 더 미안한 일이 있습니다. 2009년 당시 임신 중이었기에 그때 태어나 자란 아이도 폐기능이 썩 좋지 않습니다. 자신도 억울하지만, 아이가 무슨 죄인가 싶어 가슴이 미어집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2011년. 11년째 기업, 정부와 싸워오고 있지만, 아직도 결말이 모호합니다. 지난해 가해 기업과 피해자들이 모여 '조정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이게 지금 무산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가해 기업들의 핵심 요구 사항은 '종국성' 보장입니다. 조정위 결정에 따른 보상이 끝나면, 그것으로 모든 문제를 정리하자는 것입니다.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참 속 편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옥시 본사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기업 규탄 및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옥시 본사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기업 규탄 및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옥시·애경 반대로 조정안 무산 위기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정위는 지난해 10월 출범했습니다. 옥시, 애경 등 가해 기업 측에서 적극 조정을 요청했습니다. 조정위는 피해자 7,000여 명에게 최대 9,240억 원을 지급하라는 안을 내놨습니다. 대신 피해보상금 총액을 이번에 확정지어 한 번에 지급하자는 걸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이젠 매듭짓겠다는 뜻입니다.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김경영씨 사례에서 보듯, 본인의 병이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고, 또 아이의 병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 조금이나마 호전된다면 다행이지만,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천식이 더 악화된다면 그보다 더 억울한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조정안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입니다. 10여 년간 기업, 정부와 싸워와야 했던 세월에 지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정을 적극 요청했던 옥시와 애경이 조정안을 거부했습니다. 조정금액의 60% 이상을 부담해야 하는 데다, 종국성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섭니다. 강제적 권한이 없는 조정위의 최종안은, 어느 한쪽이든 수용하지 않으면 무산됩니다.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김이수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김이수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이 조정안 100% 수용한 사례 없지 않아

기업 입장에서는 종국성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방식일 수밖에는 없는 걸까요. 전문가들은 비슷한 사례인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사건'을 보라고 말합니다.

이 사건은 2007년 삼성전자 기흥공장 반도체 생산라인 직원이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불거졌습니다. 인과관계 여부를 두고 팽팽히 맞서다 2018년에 가서야 가까스로 조정안이 성립됐습니다. 이 조정안에는 △피해자 개인에 대한 보상안 △삼성전자의 공식 사과 △재발 방지 및 사회공헌 등 크게 3가지 내용이 담겼습니다.

희귀·자녀 질환은 완치까지 지원... 암 발병 기간은 퇴직 후 최대 14년까지

일단 기흥공장 반도체, LCD 라인에서 1년 이상 일한 삼성전자∙협력업체 재직∙퇴직자 전원을 보상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질병도 일반 암 16종과 희귀암 22종, 희귀질환 전체를 포함시켰습니다. 보상액 또한 암은 1인당 최대 1억5,000만 원, 희귀‧자녀 질환은 최초 진단비 500만 원과 완치까지 매년 30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 문제가 됐던 종국성 문제는 어땠을까요. 삼성전자의 경우, 피해보상 기간을 조정 성립 이후 10년까지로 열어 놓는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암 발병 기간도 퇴직 후 10~14년으로 설정했죠. 2028년 이후는 그간의 산재보험에 의한 직업병 인정 사례 등을 참고해 적절한 방안을 다시 강구하기로 했습니다. 열린 결말로 해뒀으니 나중에 정말 억울하다는 사람이 나온다면, 다시 한번 논의할 여지가 있는 셈입니다.

"징벌적 피해보상제 도입하라"는 목소리도 나와

물론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삼성전자 반도체 사건과 직접 비교하는 건 어렵다고도 합니다. 9개 기업이 얽혀 있어 사회적 책임이 분산된 느낌도 강하고, 피해자 또한 더 많은 데다 단일 제품 피해자냐 복수 제품 피해자냐 등으로 다양합니다. 하지만 삼성전자 반도체 사례에서 보듯, 기업이 전향적인 판단을 내린다면 종국성 문제 해결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가습기살균제 조정위 활동 기한은 이번 달까지입니다. 28일쯤 조정위 활동의 연장 여부를 논의한다지만, 그간의 논의 과정을 살펴봤을 때 연장이 어렵고, 연장된다 한들 다른 뾰족한 수가 나올 것 같지도 않습니다. 조정이 무산되면 피해자들은 결국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내야 합니다. 지난한 법적 다툼이 시작되는 거지요.

이 때문에 '징벌적 피해보상제' 도입 주장이 나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건 당시 피해자단체 반올림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던 공유정옥씨는 "피해자들이 피해보상 받으려 긴 시간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는 현실 자체가 잘못됐다"며 "기업의 잘못으로 한 사람에게라도 문제가 생기면 충분한 보상을 하게 하는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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