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만큼 영욕을 경험한 스포츠는 없을 듯하다. 한국에 현대식 당구가 보급된 것은 100여 년 전이다. 한때 우리나라는 당구장을 '유기장업'으로 분류해 청소년 출입을 막았다. 여성들도 사실상 출입이 어려웠고 성인 남성들만 즐기는 '아재 스포츠'였다.
이런 당구가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1989년 당구장은 체육시설로 분류됐고, 1993년 헌법재판소는 청소년 출입금지를 위헌으로 결정했다. 아시안게임,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적도 있다. 해피엔딩이다.
반대 스토리도 있다. 당구공에 대한 얘기다. 초창기 당구공은 코끼리 상아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1860년대 당구인구가 늘면서 공급부족 문제와 함께 코끼리 남획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대체재를 찾기 시작했고 개발자에게 당시 가치로 1만 달러 포상금이 걸렸다. 1869년 미국의 존 웨슬리 하얏트라는 사람이 상아를 대체할 제품을 발명했다. 천연수지 셀룰로이드로 만든 당구공이다. 인류 최초의 플라스틱 제품이 탄생한 순간이다.
플라스틱 당구공은 코끼리 멸종은 막았지만 인류에게 더 큰 숙제를 안겼다. 천연수지 플라스틱이 합성수지 플라스틱으로 바뀌면서다. 합성수지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전 세계 연간 플라스틱 제품 생산량은 1950년 150만 톤에 그쳤으나 2020년 3억6,700만 톤으로 245배 증가했다. 지천이 플라스틱 제품으로 넘친다. 지난 70년간 총 92억 톤의 플라스틱 제품이 생산됐지만 이 중 약 30%는 아직 사용 중이고, 6% 정도는 재활용되고 있다. 나머지 3분의 2는 폐기되거나 소각돼 고스란히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양 쓰레기의 80%는 이미 플라스틱이 차지했고 2050년에는 해양생물보다 그 숫자가 많을 것이라 한다. 플라스틱의 편리성을 봤지만 이후 문제에 대해서 간과한 결과다. 플라스틱의 장점도 많아 사용금지는 어려울 듯하다. 재활용률을 높이거나 생분해성 플라스틱과 같은 지속가능한 소재 개발이 답이다. 과학자와 기업이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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