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검찰개혁은 검수완박이 아니다
뻔한 의도에 진지한 논의 가치도 없어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출구 모색해야
논의는 단순 솔직해야 한다. 위장된 명분과 감춰진 의도, 취사선택된 사실들을 뒤섞어 버리면 본질은 사라지고 뭐가 뭔지 모르게 사안이 엉킨다.
분명히 해둘 게 있다. 매 정권마다 언급해온 검찰개혁은 이런 게 아니었다. 핵심은 물론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인사권 독립이 근본책이되 검찰지휘부를 선출직으로 하지 않는 한 묘책이 없다. 그래서 권한 분산이었다. 일정 수준의 견제와 보완으로 어떤 경우에도 검찰이 마냥 내달릴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고 자탄했던, 그게 검찰개혁이었다.
과정이 편법이었어도 어쨌든 검경수사권을 조정한 형사소송법이 공포되고 공수처까지 출범하면서 DJ와 노무현이 구상한 수준의 검찰개혁은 이뤄졌다. 민주당도 당시 “법률적 검찰개혁은 마무리됐다”고 선언했다. 학계, 법조계, 언론계도 결국은 받아들였다. “앞으로 기관 간 관계설정, 권한 다툼, 법적 허점 등을 보정해가면서 국가수사기관의 독립성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진짜 힘든 개혁”이라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검수완박은 우리에게는 근본 없는 개념이다. 추미애 법무부 시절, 윤석열 검찰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검찰개혁 용어를 정치권력에서의 독립과는 완전히 반대 의미로 재생시켰다. 윤석열의 급부상이라는 뜻밖의 부작용으로 슬그머니 잦아들었던 이 광풍이 새 정부 출범 직전에 돌연 되살아났다. 그것도 검수완박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지금 헌법을 논하고, 보완책을 따지고, 국민 피해를 걱정하는 따위는 본질이 아닐뿐더러 자칫 진지하게 논의할 만한 사안으로 보게 하는 우를 범하는 일이다. 이런 건 장래 전반적인 사법체계 개선이 필요한 정상 상황에서나 어울리는 논의다. 말을 늘일 것도 없다.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겼을 경우를 상정하면 답이 나온다. 검수완박은커녕 길들인 검찰을 통해 정권에 위험한 수사를 무마하려 들었을 것이다. 나아가 윤석열 처가에 대한 수사를 통해 그의 정치적 생명을 아예 끊어놓으려 했을 것이다.
사실 ‘검수완박’ 용어에 본질이 담겨있다. ‘수사체계 재설계’ 수준의 위장을 씌웠으면 음험한 의도를 좀 가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니. 정치적 프레임 씌우기에 능한 그들이 오죽 다급하고 절실했으면 보복과 증오의 느낌 그대로인 이 용어를 날것으로 들이밀었을까.
국민기본권 증진이나 인권보호는 원래 정치인들의 절실한 관심사가 아니다. 무엇보다 우선하는 정치행위의 동기는 자신들의 안위나 당의 이해다. 검수완박은 그 전형적 사례다. 더욱이 검찰수사권 향배는 정치게임을 할 만큼 정치경제적으로 힘 있는 이들에게나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대다수 평범한 국민에게는 일상의 법률적 조력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대안 부실한 검수완박은 일반국민에게는 도리어 재앙이기 십상이다.
민주당 의원이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국회 논의가 우스워 보이느냐”는 취지로 물었다. 스스로도 겸연쩍은 속내의 노출로 보이는 질문에 대신 답하자면, ‘아주 우습다’. 급기야 위장탈당 같은 희대의 꼼수에까지 이르면 그저 어처구니없는 실소만 나온다.
패자를 나무라는 건 인정이 아니지만 검수완박에 관한 한 도리가 없다. 패배 후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후일도 기약할 수 있는 법이다. 기대난망이지만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이 떳떳지 못한 일을 접을 명분을 찾아보는 게 옳다. 이런 부끄러운 뒤태로 어떻게 윤석열 정부를 당당하게 견제하고 민심을 다시 얻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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