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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이 고향 같아요"... 아프간 학생들 하루하루가 '미러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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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이 고향 같아요"... 아프간 학생들 하루하루가 '미러클'

입력
2022.04.23 04:0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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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기여자 자녀들 한국정착기>
85명 지난달 울산 초·중·고 분산 배정
제주 수학여행 앞두고 게임연습 한창
교육청·교사·한국 친구들 특급 지원에
한국어부터 문화까지 스펀지처럼 흡수
한국 동급생들 "친구 적응 돕는 건 당연"

지난 15일 울산생활과학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자녀인 타왑이 친구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울산= 박은경 기자

지난 15일 울산생활과학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자녀인 타왑이 친구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울산= 박은경 기자


아이 앰 그라운드 자기소개 하기. 그렇지! 허벅지 치고, 손뼉! 오른쪽 엄지, 왼쪽 엄지 순으로 이렇게. 그래 맞아!!

이달 15일 울산광역시 동구 화정동 울산생활과학고 다문화교실이 2학년 학생들의 환한 웃음 소리로 가득했다. 학생들은 친구들과 함께 6월 수학여행에 가서 함께할 단체 게임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중 동작이 조금 어색한 두 친구가 있었다. 타왑(17)과 사디쿨러(17). 같은 반 친구 예진(17)과 해원(17)은 게임 진행방식, 노래, 리듬, 그리고 벌칙을 두 친구에게 상세히 알려줬다. 처음 해보는 생소한 게임이지만 타왑과 사디쿨러는 연신 함박웃음을 보였다. 동작이 성공할 때마다 친구들과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았다.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자녀들이 친구들로부터 오는 6월 수학여행에서 같이 할 게임을 배우고 있다. 울산= 박은경 기자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자녀들이 친구들로부터 오는 6월 수학여행에서 같이 할 게임을 배우고 있다. 울산= 박은경 기자


학령기 청소년 85명이 초중고 배정

타왑과 사디쿨러에게 이번 제주 수학여행은 일생일대의 이벤트다. 이렇게 친절한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먹고 자며 제주도 이곳저곳을 구경할 수 있는 3박 4일. 타왑은 서툰 한국말로 기대감을 풀어냈다. "아프간에도 수학여행이랑 비슷한 게 있지만 자고 오지는 않아요. 무척 설레요."

이런 일상을 누리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고,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몰라 조마조마 가슴 졸여야 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8월 한국으로 온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아이들이다.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간 내전에서 승리하자, 한국대사관 등에서 일하던 이들은 서방 국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 몰렸다. 결국 한국 정부의 구출작전(미러클 작전) 끝에 안전한 곳에 둥지를 틀 수 있었다.

입국한 79가구 중 29가구가 현대중공업 협력업체에 취업해 올해 2월부터 울산에 둥지를 틀었다. 부모들이 일터에 자리 잡는 동안, 학교에 다녀야 하는 아이들 85명은 지난달부터 울산 시내 초·중·고에 분산 배정됐다.

지난 15일 울산생활과학고등학교 다문화교실에서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자녀인 스이에라(왼쪽부터), 조할, 타왑, 사디쿨러가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울산= 박은경 기자

지난 15일 울산생활과학고등학교 다문화교실에서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자녀인 스이에라(왼쪽부터), 조할, 타왑, 사디쿨러가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울산= 박은경 기자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한국말과 문화

그중 울산생활과학고엔 4명의 아프간 학생들이 자리 잡았다. 타왑과 사디쿨러 외에도 고1 여학생인 조할(16)과 스이에라(16)가 있다. 네 사람은 1교시는 각자 반에서 수업을 듣고, 2교시부터 7교시까지는 다문화교실에 한데 모여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배운다.

이날은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가장 어려움을 느낀다는 높임말을 배우는 날. 선생님이 “지금 뭐해요?”라고 묻자 네 사람은 차례로 “공부해요-공부해, 운동해요-운동해, 게임해요-게임해”라며 높임말과 반말을 둘 다 사용해 답했다.

“자요-자해” 누군가 그럴듯한 오답을 내놓자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다문화반 담당인 김영국 교사는 “처음에는 남녀가 서로 마주보는 것조차 어색해 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데 익숙해졌다”며 “입학 초 단어 나열 수준이던 대화도 이제는 단문을 주고받는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성과를 설명했다.

한국 학교를 다닌 지 한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들의 적응 속도는 놀라울 정도란다. 김 교사는 “고등학생이라 종교관은 이미 굳어졌지만, 다른 한국 문화는 마치 스펀지처럼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이르면 2학기부터 네 사람을 원래 학급에 복귀시키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경원 교장은 “무조건 분리 교육을 하는 게 오히려 적응을 더디게 할 수 있다”며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고 한국어 구사 정도에 따라 정규 수업 과정에 참여하는 시간을 점차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할은 수업시간에 ‘고향의 봄’을 배운 뒤 노트에 “울산이 따뜻한 고향처럼 느껴진다”고 썼다. 울산= 박은경 기자

조할은 수업시간에 ‘고향의 봄’을 배운 뒤 노트에 “울산이 따뜻한 고향처럼 느껴진다”고 썼다. 울산= 박은경 기자


“한국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조할이 보여준 일기장에는 한국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했다. 울산= 박은경 기자

“한국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조할이 보여준 일기장에는 한국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했다. 울산= 박은경 기자


쉬는 시간마다 함께하는 한국 친구들

타왑 사디쿨러 조할 스이에라가 한국에 빠르게 녹아드는 데는 교육청과 학교, 친구들의 물심양면 도움이 있었다. 시교육청은 아프간 학생들의 학습을 도울 인력 88명을 배치해 1대 1 수준의 밀착 지원을 제공했고, 재학생·교직원·학부모를 대상으로 다문화 이해 교육도 강화했다.

무엇보다 한국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같은 반 친구들은 쉬는 시간마다 다문화교실을 찾아가 아프간 친구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예진이는 "같은 반 친구니까 적응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며 "한국어 실력을 키우는 데 대화만큼 좋은 게 없다"고 말했다.

아프간 친구들이 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거부감보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고 했다. "당사자인 저희는 괜찮았거든요. 그런데 어른들이 되레 걱정을 하더라고요. 다문화 친구들은 원래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리면 배우는 것도 많지 않을까요" '게임 선생님' 해원이의 말이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할이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려는 듯 가만히 공책을 들어 보였다. 공책엔 비뚤비뚤 한글로 "울산이 따뜻한 고향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울산=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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