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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괴물로부터 도시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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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괴물로부터 도시를 구하라!

입력
2022.04.22 04:30
수정
2022.04.22 15:2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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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제미신 '우리는 도시가 된다'

뉴욕의 스카이라인. 게티이미지뱅크

뉴욕의 스카이라인. 게티이미지뱅크

미합중국의 북동부 뉴욕주의 남쪽 끝에 있는 ‘뉴욕 시티’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 중 하나이자 상업, 금융, 미디어, 예술, 패션의 중심지다. 도쿄,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도시이자 세계의 문화 수도로 불리는 곳이다. 2020년 기준 860만 명의 인구가 이곳에 살고 있고 교외 지역까지 포함하면 1,6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매일 활보하는 거대도시다.

하지만 뉴욕에 대해 말할 때 이런 수치만을 들어 설명하는 것은 어쩐지 부족하게 느껴진다. 제이지와 앨리샤 키스가 함께 부른 ‘Empire State of Mind’에서 묘사하듯 “꿈이 만들어지는 콘크리트 정글”이자 마치 “새로 태어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뉴욕은, 단순히 도시라기보단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생명체 같다.

N. K. 제미신의 소설 ‘우리는 도시가 된다’는 어쩌면 대도시에는 정말로 생명이 깃들어 있으며, 이 도시를 수호하는 화신이 존재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다. SF상 중 가장 영예로운 것으로 여겨지는 휴고상을 3년 연속 수상한 작가의 새로운 장편 시리즈로, ‘우리는 도시가 된다’는 위대한 도시들을 내세운 ‘어반 판타지’ 2부작 중 1편에 해당한다.

'우리는 도시가 된다'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황금가지 발행. 600쪽. 1만6,800원

'우리는 도시가 된다'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황금가지 발행. 600쪽. 1만6,800원


특정한 장소에 충분한 숫자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곳만의 독특한 문화를 충분히 발전시키면 모든 현실의 층들이 압축돼 변화하기 시작한다. 도시가 하나의 ‘자의식 있는 생명체’가 되는 순간, 도시는 구성원의 누군가를 자신의 ‘산파’로 선택한다. 도시를 대변하고 보호하는 ‘화신(化神)'이다. 소설은 뉴욕의 다섯 개 자치구인 맨하튼, 브롱크스, 퀸스, 브루클린, 스태튼아일랜드의 화신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각성하고 위기에 처한 도시를 구한다는 구성을 한 일종의 히어로물이다.

이 화신들은 도시와 연결돼 있으며 도시의 호흡을 느낀다. 도시에 위험이 발생하면 이는 화신들에게 신체적인 고통으로 나타난다. 반대로 화신이 위험에 처하면 도시 역시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각각의 화신은 해당 자치구의 특성을 사람으로 구현해낸 결과다. 브루클린의 화신이 전직 래퍼이자 현역 시의원인 흑인 여성이고, 퀸스의 화신은 인도에서 온 수학 귀재 파드미니이며, 브롱크스의 화신은 미국 선주민 중 하나인 레나페족 출신의 미술관 관장이며, 외딴섬인 스탠튼아일랜드의 화신이 사서로 일하고 있으며 다른 화신들과 겉돈다는 설정은 각 자치구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도시를 위협하는 괴생물체들이 촉수와 팔다리를 지니고 있고 그중 ‘최종 보스’의 이름이 H.P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리예’라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 소설은 작가 러브 크래프트 소설에 대한 일종의 반격이다.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현대 공포소설의 초석을 세웠다고 여겨지는 러브 크래프트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러브 크래프트의 단편 소설 ‘레드훅의 공포’는 뉴욕을 ‘지저분한 혼혈인’ ‘죄악으로 물든 가무잡잡한 얼굴들’ ‘아시아의 원숭이’들이 판치는 곳으로 그린다. 러브 크래프트가 경멸했던 이민자와 외국인들이 크래프트라는 인종차별주의자에 맞서 도시를 구하는 것이 결국 이 소설 '우리는 도시가 된다'인 셈이다.

N. K. 제미신. 황금가지 제공

N. K. 제미신. 황금가지 제공


‘적’들이 도시를 위협에 빠트리는 방식이 ‘혐오’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것 역시 상징적이다. 이 적들은 비영리적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에 후원을 빙자해 인종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이고, 반유대적이고, 동성애혐오적인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온라인상의 조직적인 공격이나 백인 남성들의 시위를 부추기고 오랫동안 지켜온 집의 소유권을 빼앗는 등의 방식으로 도시를 손상시킨다. 소설이 말하는 바는 명쾌하다. 도시가 생명체라면, 도시를 병들게 하는 것은 혐오이며, 도시를 구할 수 있는 것은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이라는 것.

당연히 이 소설이 가장 많이 읽혀야 할 곳 중 하나는 인구 1,000만의 도시 서울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보장 시위를 ‘수백만 서울 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로 규정하며 이들을 혐오세력으로 몰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혐오’와 ‘차별’을 부추겨 도시를 위험에 빠트리는 ‘진짜’ 적이 누군지.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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