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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세계화를 위한 도량…봉암사 앞 문경 세계명상마을 가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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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세계화를 위한 도량…봉암사 앞 문경 세계명상마을 가 보니

입력
2022.04.21 14:47
수정
2022.04.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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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어떻게 설명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깨치지 않고 설명하려면 형용모순만 일어납니다. 하지만 거기서 깨침이 일어납니다. 화두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손가락을 보고 손가락이라 말해도 틀리고 손가락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틀립니다. ‘이게 뭐지?’ 하다 보면 어떤 생각이 일어납니다.

각산 스님·문경 세계명상마을 선원장


불교계가 선종의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 대중화에 나섰다. 스님과 불자뿐만 아니라 타 종교인 등 누구나 머물면서 간화선을 수행하는 ‘문경 세계명상마을’이 20일 경북 문경시에 문을 연 것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종립 선원인 봉암사가 절 앞에 땅을 제공하고 선승들의 모임인 전국선원수좌회가 기획과 운영을 맡았다. 희양산 아래 펼쳐진 8만4,000여㎡ 부지에 선방과 수행자 숙소, 세미나실 등이 들어섰다. 수행자들은 참가비를 내고 숙소에 머물면서 간화선을 중심으로 호흡 명상 등 초기 불교의 수행법을 체험한다. 두 달마다 무료 프로그램도 열린다. 프랑스의 테제 공동체 등을 참고한 구상이다.


각산 스님과 수행자들이 20일 오후 경북 문경시 문경 세계문화마을에서 좌선하면서 명상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 김민호 기자

각산 스님과 수행자들이 20일 오후 경북 문경시 문경 세계문화마을에서 좌선하면서 명상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 김민호 기자


수행자들이 20일 오후 경북 문경시 문경 세계명상마을로 들어서고 있다. 세계명상마을에서는 현재 1단계 시설 조성 사업의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김민호 기자

수행자들이 20일 오후 경북 문경시 문경 세계명상마을로 들어서고 있다. 세계명상마을에서는 현재 1단계 시설 조성 사업의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김민호 기자


이날 오후 첫 좌선 수행에 참가한 초대 선원장을 맡은 각산 스님의 지도에 따라서 수행자들은 방석 위에서 등을 맞대고 앉아서 명상했다. 누워서 호흡을 고르는 시간도 있었다. 수행자들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좌선한 이후, 저마다 마음에 떠오른 의문을 각산 스님에게 묻고 답을 들었다. 각산 스님은 초기 불교의 호흡 명상과 간화선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절대로 폼 잡으면 안 된다. 마음대로 편하게 앉아라. (앉은 자세에서) 다리를 바꿔도 되고 일어서도 된다. 중요한 것은 절대로 잘 앉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란 것만 명심해라”면서 “호흡 명상을 할 때는 숨을 느끼려고 하지 말고 숨을 알기만 하면 된다”고 수행자들에게 강조했다.

간화선은 부처의 깨달음을 얻는 수행법이다. 선종에 전해 내려오는 화두 1,700가지를 고민하면서 참선하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점에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명상과 다르다. 수행자는 번뇌와 망상을 떨쳐내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한 끝에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선종은 지식을 바탕으로 이해만 하는 것으론 한계가 있다고 본다. 화두로 사유를 차단해서 본질을 바라본다는 게 중요하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간화선은 선승 등 전문적 수행자를 중심으로 전해져 왔다.


기자가 19일 방문한 경북 봉암사 경내에는 불자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봉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이 지정한 종립 선원으로 1년에 한 번, 부처님오신날에만 대중에게 산문을 연다. 김민호 기자

기자가 19일 방문한 경북 봉암사 경내에는 불자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봉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이 지정한 종립 선원으로 1년에 한 번, 부처님오신날에만 대중에게 산문을 연다. 김민호 기자


19일 경북 봉암사 대웅전 내부에 수행하는 스님들의 이름이 붙여진 방석들이 놓여 있다. 김민호 기자

19일 경북 봉암사 대웅전 내부에 수행하는 스님들의 이름이 붙여진 방석들이 놓여 있다. 김민호 기자


19일 경북 봉암사 대웅전 내부에 불이 밝혀져 있다. 김민호 기자

19일 경북 봉암사 대웅전 내부에 불이 밝혀져 있다. 김민호 기자


세계명상마을에 입소한 수행자들은 이날부터 짧게는 2박3일, 길게는 일주일 동안 수행에 들어갔다. 수행은 기본적으로 자율적으로 진행된다. 전국선원수좌회에서 나온 선사 53명이 돌아가면서 수행을 지도하지만 이들은 길잡이 역할을 맡을 뿐이다. 각산 스님은 “일어나서 잘 때까지 앉든 눕든 자율적으로 하고 오후에는 수행에 관해서 질의 응답을 한다. 이게 세계적 수행 프로그램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방식의 수행은 불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수행자들은 입소하면서 선원에 휴대전화를 맡기고 수행에 전념한다. 대전에서 온 김종완(74)씨는 본격적인 수행을 앞두고 “간화선은 스님들이 하는 것이고 우리 같은 불자들은 생활 속에서 참선 공부를 한다”면서 “이제까지 여러 곳의 선원을 다녀봤지만 이곳처럼 휴대폰을 제출하라는 곳은 처음이다. 시간도 휴대폰으로 보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면서 웃었다.

불교계에는 수행자는 수행에 전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봉암사가 세계명상마을 개원에 맞춰서 일정 기간 대중에게 경내를 공개하기로 했다가 막판에 계획을 바꾼 것도 이 때문이다. 봉암사는 1982년부터 스님들만 출입하는 수행 도량으로 운영돼 왔다. 평시에는 자원봉사자 등 용무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불자도 출입할 수 없다. 1년에 한 번, 부처님오신날에만 대중에게 산문을 연다. 실제로 경내에서는 휴대폰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봉암사 주지 진범 스님은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스님들이 머무는 공간에는 텔레비전(TV)도 없고 사찰 초입 행정시설에만 인터넷망이 설치돼 있다"면서 봉암사는 수행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천년 산문이 열린다'고 홍보되면서 (내부에서) 난리가 났다"면서 "명상마을 오시는 분들께 미안하고 죄송스럽기도 하고, 불자들이 절에 들어오지 못하는 게 가슴 아프다"고 전했다.


문경 세계명상마을 선원장을 맡은 각산 스님이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선방 앞에서 시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

문경 세계명상마을 선원장을 맡은 각산 스님이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선방 앞에서 시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


그럼에도 세계명상마을이 문을 열게 된 배경에는 간화선을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전통 문화로 국내외에 보급하겠다는 선승들의 의지가 있었다. 지난해 입적한 고우 스님은 간화선 대중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대표적 선승이다. 고우 스님과 함께 중국 선종 사찰들을 순례했던 박희승 불교인재원 생활참선 지도교수는 “고우 스님은 중국 불교는 선종의 출발점이지만 공산화와 문화혁명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종교로 변해서 선맥이 단절됐고, 일본의 불교는 교종의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했다”면서 “반면 한국 불교는 선의 정체성을 계승해 나가고 있다고 봤다”고 전했다. 진범 스님 역시 "봉암사와 세계명상마을은 이와 잇몸 같은 불가분의 관계"라면서 "서로 협조와 협력을 해야 한다. 크게 보면 모두 부처님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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