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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도 기본권 있다" 79%, "농장·실험동물은 제외" 적용 범위엔 이중적 시각 뚜렷

입력
2022.04.23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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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아니다" 73% 동의하지만
범위 놓고 반려동물 79% 불구
농장동물은 36% 찬성 그쳐

시각물_‘동물권’에 대해 알고 있나

시각물_‘동물권’에 대해 알고 있나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가구는 약 313만 가구에 이른다. 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반려동물 양육 가구가 늘어나면서 한국에도 ‘동물권’ 도입에 대한 요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즉, 동물도 인간과 동등한 생명권을 지니며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고 학대나 착취 등을 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이를 법적으로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동물의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어지고 있지만, 한쪽에선 잔혹한 동물 학대 범죄가 끊이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이처럼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동물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은 지난달 25~28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우리 사회가 우리 주변 동물 및 동물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는 조사를 진행하였다.

동물권, 낯선 개념이지만 ”동의한다“ 79%

이번 조사에서 ‘동물권’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는 응답은 33%에 그쳤다. 절반 이상(51%)은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잘 모르는 개념이라고 답했고, 아예 들어본 적이 없다는 응답도 16%였다. 그런데 응답자에게 동물권의 개념(동물도 인간과 동등한 생명권을 지니며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고 학대나 착취를 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음)을 설명한 후 의견을 묻자, 응답자의 79%가 ‘동물에게도 이러한 권리가 있다’는 데 동의하였다. 동물권이라는 개념이 생소함에도 불구하고, 동물에게도 보장해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는 응답이 높은 것은 우리 사회가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음을 나타낸다.

시각물_법적으로 동물권 보호가 명시될 경우, 보호의 대상이 되는 동물의 범위는

시각물_법적으로 동물권 보호가 명시될 경우, 보호의 대상이 되는 동물의 범위는


모든 동물에 동물권 적용것, 동물권 헌법 의무화는 의견 갈려

그러나 동물권을 가진 동물의 범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였다. 모든 동물이 보편적으로 동물권을 갖고 있다는 응답은 35%에 그친 반면, 농장동물, 실험동물 등 특수한 목적이 있는 동물을 제외한 나머지 동물이 동물권을 갖고 있다는 응답은 49%였다. 이러한 결과는 동물 권리에 대한 의식이 아직 반려동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드러낸다.

또한 동물권을 헌법에 명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렸다. ‘동물의 가치 판단은 개인에 다라 다르므로 동물권의 보호를 헌법으로 의무화해선 안 된다’는 응답이 45%로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므로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41%)’보다 우세했다. 동물권에는 찬성하지만 그것의 보호를 의무화하는 것에는 미온적인 입장인 것이다.

시각물_동물권을 헌법에 명시하자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시각물_동물권을 헌법에 명시하자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73%가 동의

현행 민법은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으로 규정하고 있어,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이나 동물피해에 대한 배상이 ‘물건’으로서의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되어 왔다. 이는 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과 괴리되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고, 법무부는 지난 2021년 9월 민법 개정안에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선언적인 조항을 신설했다. 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여기고 동물보호 의식이 높은 사회적 요구에 부합하기 위한 이 조항에 대해 10명 중 7명(73%)이 ‘적절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시각물_“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법무부 개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시각물_“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법무부 개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물건’이 아닌 동물은 반려동물과 동물원 동물로 한정

그러나 이 조항의 수혜를 입을 수 있는 동물의 범위에 대해서도 응답자들이 그은 선은 분명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조항에서 ‘동물’에 해당하는 범위를 묻자 ‘반려동물’이 79%로 가장 높았고, ‘동물원에 있는 동물(49%)’, ‘길고양이, 비둘기 등 도시 야생동물(41%)’. ‘농장동물(36%)’. ‘멧돼지, 고라니 등 숲·산의 야생동물(35%)’, ‘실험동물(33%)’이 뒤를 이었다. 농장동물과 야생동물, 실험동물이 ‘동물’에 해당된다는 응답은 반려동물의 절반 수준인 것이다. 이는 인간과 접점이 많고 심리적으로 가까운 동물만 인간이 보호해야 할 ‘생명’이며, 농장동물이나 실험동물 등의 인식은 아직까지는 인간이 이용하는 ‘물건’에 머물러 있음을 드러내는 결과이다.

시각물_“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문장에서 ‘동물’이 정의하는 범위는

시각물_“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문장에서 ‘동물’이 정의하는 범위는


주변 동물학대 수준 ‘심각’하다는 의견 과반, 정서적 고통·위협도 동물 학대

동물에 대한 이중적인 시각은 동물 학대에 대한 인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동물에 대한 학대 문제 심각성을 물은 결과, 반려동물, 실험동물, 도시 야생동물, 농장동물에 대한 학대가 ‘심각하다’는 응답이 과반이어서 우리 사회에 동물 학대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특히 학대로 인한 죽음이나 상해 등 법이 정한 신체적 고통 뿐만 아니라 불결한 환경, 밀집 사육, 감금 사육, 동물의 신체 변형 시술과 같이 공장식 축산업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히는 행위들 역시 학대라는 의견이 70% 이상으로 높았다. 또한 동물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 겁을 주는 행위와 같은 정서적인 위협도 ‘학대’라는 응답이 과반에 달해 동물 학대 행위에 대한 인식과 민감성이 법이 정한 수준에 비해 높음을 보여준다.

시각물_다음 항목이 동물 학대라고 생각하는 응답

시각물_다음 항목이 동물 학대라고 생각하는 응답


농장동물의 복지 수준 10명 중 6명이 ‘낮다’고 평가

동물 학대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학대 행위에 대해 법이 정한 수준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장동물과 실험동물에 대한 인식은 판이하게 달랐다. 공장식 축산업 환경에 대한 높은 학대 민감성은 농장동물의 복지 수준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이어졌다. 현재 농장동물의 복지 수준이 ‘낮다’는 응답이 61%로 ‘높다’는 평가(19%) 대비 3배가량 높았다. 효율성, 경제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기계적으로 수행되는 행위들이 농장동물의 복지를 저해시킨다는 의견이 높은 것이다.

반면 실험동물의 복지 수준이 ‘낮다’는 의견은 48%로 절반을 넘지 않았다. 실험실에서 비공개로 진행되는 동물실험의 특성상 일반인이 정확한 실태를 알기 어렵기 때문일 수 있고 실제로 실험동물의 복지 수준을 ‘모르겠다’고 답한 응답도 35%로 낮지 않았으나, 농장동물의 복지 수준이 낮다는 응답에 비하면 13%포인트 낮은 것이다. 또한 신체적 고통, 감금, 질병 방치 등 앞서 동물 학대라고 꼽은 여러 행위가 가해지는 동물실험에 대해서는 10명 중 8명(78%)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절반 이상(52%)은 동물실험을 진행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응답했다. 학대로 볼 수 있는 여러 행위가 자행됨에도 불구하고 동물실험은 과학 발전을 위한 ‘필요악’으로 여겨지는 상황이다.

시각물_다음 동물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학대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응답

시각물_다음 동물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학대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응답


동물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분명 크게 변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동물의 처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졌다. 문제는 이 인식의 변화가 아직까지는 반려동물 위주로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동물권에 대해서 응답자 대다수가 긍정적으로 답했지만, 권리가 있는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을 단호하게 구분 짓는 것에서부터 동물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인 태도가 확연히 드러난다. 법은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고 선언했으나 우리의 인식 속에서 어떤 동물은 여전히 물건으로 남아 있다. 동물실험에 대해서도 인간의 편의를 우선시하는 시각이 나타난다. 이는 보편적인 동물권이 성공적으로 한국 사회에 도입되기 위해선 법과 제도의 마련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병행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이은별 한국리서치 여론2본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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