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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린 너무 취해 살았다

입력
2022.04.2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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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18일 저녁 서울 홍대거리가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뉴스1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18일 저녁 서울 홍대거리가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뉴스1

“시간은 얼마 안 됐는데, 우리 꽤 많이 마신 거 같지 않냐?” 밤 9시 30분, 친구 A가 뜻밖의 ‘2차 생략’ 운을 띄웠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둘은 더 마시자는 제안을 꺼내지 않았다. 연장전, 더블헤더에 익숙했던 우리에겐 이날의 ‘정규이닝 종료’는 꽤나 이례적인 결과다. 코로나19 직전까지만 해도 만났다 하면 날을 넘기기 일쑤였던 술꾼 도시 남자 셋은 밤 10시가 채 되지 않아 각자 집으로 향했다.

귀갓길이 몹시 즐거웠다. 우리에게 이런 ‘절주의 날’이 왔다는 게 새삼 기쁘고, 예전엔 왜 이리 취해 살았나 후회도 됐다. 식당에 들어설 때만 해도 당시 영업제한 시간인 밤 12시에 임박해서야 헤어질 걸 각오했던 터였다. 만나면 참 좋은 친구들인데, 한 번 잔을 들었다 하면 “집에 가면 뭐하냐”며 내달린 일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주(酒)님’의 유혹을 뿌리치고, 군더더기 없이 자리를 마무리한 우리의 변화가 신선했던 이유다.

사회적 거리두기 2년여간 생활패턴과 신체 변화가 뚜렷했다. 귀가 후 쉬거나 운동하는 시간이 늘어난 덕인지 올해 초 펼친 건강검진 결과 책자엔 간 수치, 콜레스테롤 수치가 역주행해 정상 범위에 안착했다. 늦어도 밤 10시 전후면 귀가하게 되니 휴식이나 수면 시간도 어느 정도 보장됐다. 저녁 있는 삶이 가져온 긍정적 변화라 믿는다.

돌이켜 보면 우린 코로나19 이전까지 만취 사회에서 살아왔다. 좋으면 좋다고, 열 받으면 열 받는다고, 처음 만났으니 친해지자고 주님을 소환해 ‘끝장을 보는’ 술 문화가 용인됐고, 대부분 순응하거나 당연시했다. 음주운전이나 취객 시비 등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도 빈번했다. 우릴 더 솔직하게 만들어주고 흥을 높여 주는 주님과의 결별은 아직 상상 못할 일이나, 기댈 필요까진 없었음을 코로나19 확산 시기를 통해 비로소 깨달은 셈이다.

실제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코로나19 기간 동안 ‘절주의 삶’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듯하다. 질병관리청 지역사회건강조사결과에 따르면, 한 달에 1회 이상 술 마시는 ‘월간 음주율’은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59.9%에서 2021년 53.7%로 떨어졌고, 한 번의 술자리에서 많은 술(남성 소주 7잔, 여성 5잔 기준)을 주 2회 이상 마시는 ‘고위험 음주율’은 같은 기간 14.1%에서 11%로 줄었다.

답답했던 거리두기가 2년여 만에 해제됐음에도 ‘선별적 일상회복’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겠다며 실시한 재택근무를 통해 일부 직군에선 직원이 꼭 사무실에 없더라도 업무는 잘 돌아간단 사실이 확인되고, 시간과 비용 절감 효과도 체감했다. 실제 기업들은 재택과 출근의 장점을 모두 추구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근무’를 늘리고, 정보통신(IT) 기업 일부는 아예 재택근무 체제 지속을 검토하고 있다.

일상 속 위생수칙의 중요성을 온 국민이 체득한 점도 코로나19가 남긴 유익함 중 하나다. 손 씻기 생활화와 마스크 착용만으로도 감염 확률을 크게 낮출 수 있음을 모두가 확인했다. 이 밖에도 대다수가 영상통화나 화상회의, 원격수업을 경험해 보며 IT 활용 수준을 높인 계기가 됐고, 경조사 간소화도 축하하는 이나 받는 이의 부담을 덜어 줄 문화로 인식됐다. 우리가 이어가야 할, 코로나19의 유산들이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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