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점퍼, 스타디움 점퍼, 과잠(학과 점퍼)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근근이 생명력을 유지해 온 바시티(varsity) 재킷이 드디어 런웨이의 주인공이 됐다. 손목과 허리 둘레, 목 라인에 밴드가 있고 주로 가슴이나 등에 문자 또는 로고 패치가 붙은 외투로 편안함과 활동성이 장점이다. 특이한 점은 올해 이 흔하디 흔한 야구 점퍼의 패션 경쟁에 명품 업계도 가세했다는 점이다.
당장 방탄소년단(BTS)의 RM, 박재범이 입어 유명해진 루이비통의 바시티 재킷은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노랑과 검정 배색이 눈에 띄는 이 재킷은 790만 원으로 19일 현재 루이비통 공식 온라인몰에서 전 사이즈 품절 상태다. 다른 리셀 사이트에서는 여기에 200만 원의 웃돈이 붙어 올라와 있다. 바시티 재킷은 지난해 작고한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컬렉션에 즐겨 내놓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지난달 열린 2022년 가을·겨울(F/W) 컬렉션에서도 버버리, 구찌, 셀린느, 베르사체, 지방시, 오프화이트 등 여러 명품 브랜드가 바시티 재킷을 선보였다.
임지연 삼성패션연구소 소장은 "최근 럭셔리 브랜드, 명품 브랜드들이 장인 정신이나 전통, 역사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굉장히 편안하고 쉬운 아이템으로 젊은 세대에 소구하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일상성을 담아 스트리트로 내려오는 스타일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시티 재킷의 흥행은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는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 1990년대 캠퍼스 패션의 유행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박소현 경희대 의류디자인학과 겸임교수는 "젊은 세대 사이서 강세인 골프와 테니스에 적합한 옷이기도 하고, 옷 자체가 대학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바시티 재킷의 원조는 미국 하버드대 야구팀이다. 1865년, 학교 이름의 이니셜인 알파벳 'H' 패치를 가슴에 박아 유니폼처럼 입었던 데서 시작돼, 레터맨(letterman) 재킷이라고도 부른다. 대학의 과잠으로 널리 퍼진 것도 입는 사람의 소속을 드러냈던 이런 유래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시티 재킷은 젊음과 자유분방함을 상징하는 옷으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패션 아이콘이었던 영국의 고 다이애나비가 즐겨 입는 모습도 수차례 포착됐다. 박 교수는 "스타디움 점퍼는 아무리 여성스러운 느낌의 드레스나 치마에 걸쳐도 힙해 보이는 느낌을 주는 효과가 있다"며 "또 요즘 세대가 노트북, 휴대폰에 스티커 붙이는 것을 좋아하듯이 재킷에 이니셜을 붙여 얼마든지 개별화할 수 있고, 브랜드 입장에서는 그 자체가 브랜드의 아이콘이나 디자인을 어필할 수 있는 하나의 광고판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바시티 재킷의 유행은 올 하반기까지 소재, 디자인을 바꿔 가며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임 소장은 "바시티 재킷의 소재와 컬러가 차분해지고 정제돼 가는 분위기"라며 "원래 몸 판이 두꺼운 양모, 소매는 투박한 가죽으로 돼 있는 FW 제품인 만큼 비슷한 형태인 블루종, 스카잔을 넘나들며 올가을, 겨울에 더 많이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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