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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이 달라지는 시대

입력
2022.04.1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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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최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뉴스1

최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뉴스1

동네 떡볶이 집 메뉴판이 달라졌다. 3,000원 받던 떡볶이와 순대 1인분이 3,500원으로, 2,000원에 먹던 꼬마김밥은 2,500원으로 가격이 올랐다. 인상률이 최대 25%에 달한다. '파격' 인상을 전격 단행한 떡볶이 집 사장님은 가격을 올리기 하루 전 허름한 가게 문 앞에 이렇게 썼다. "죄송합니다. 재룟값 인상으로 가격을 500원씩 올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전방위 물가 공격이 지갑을 파고들고 있다. 주인이나 손님이나 괴롭긴 똑같다. 어디 떡볶이뿐이랴. 1만 원으로 냉면 한 그릇 먹기 힘든 세상이 됐다. 최근엔 칼국수 8,000원 시대까지 개막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 지역 칼국수 1인분 평균 가격은 1년 전보다 8.8% 오른 8,115원으로 사상 첫 8,000원을 넘겼다. '금가루' 된 밀가루 탓이다. 팥, 식용유, 밀가루 가격 상승에 지난겨울 거리의 붕어빵도 자취를 감췄다.

요새 물가는 나오는 숫자마다 기록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1%로 10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썼다. 석유류 가격은 1년 전보다 31.2%나 올랐고, 외식 물가 상승률(6.6%)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4월 이후 24년 만에 최대였다. 원자재 가격이 뜀박질하면서 지난 2월 생산자물가지수(114.82)도 역대 가장 높았다. 대단한 사치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외출만 하면 몇 만 원은 우습게 나간 이유가 다 있었다.


서울의 한 닭강정 집과 분식점 문 앞에 가격인상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조아름 기자

서울의 한 닭강정 집과 분식점 문 앞에 가격인상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조아름 기자

물가 상승을 반기는 사람은 없지만, 물가가 오른다고 누구나 똑같이 힘들어지는 건 아니다. 물가 뜀박질이 초래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물가가 오를 때 나라 전체로 보면 소비나 투자가 쪼그라들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지만, 개개인으로 범위를 좁히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물가가 오르면 소위 없는 사람일수록 더 힘들어진다. 부동산이나 금 같은 든든한 실물자산이 많은 사람들이야 고물가가 닥쳐도 비교적 충격이 덜하지만, 매달 고정된 벌이로 빠듯한 생활을 꾸리는 서민들은 쪼들림의 연속이다. 귀 밝은 돈은 잽싸게 지갑을 비운다. '살인 물가'란 표현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물가 천장을 아직 모른다는 점이다. 국제유가를 밀어올린 우크라이나 사태는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글로벌 공급망 불안도 계속되고 있다. 이미 서민들 머리채 잡은 물가가 어쩌면 더 오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국내로 눈을 돌려봐도 새 정부가 예고한 50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해 안 그래도 위태로운 물가 오름세를 자극할 수 있는 위험 요인들이 없지 않다.

지난 14일 물가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1.5%로 인상한 한국은행도 "당분간 소비자물가가 4%대의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어쩌면 올해 내내 인플레이션과 싸움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여러모로 앞으로가 더 중요해졌다. 인플레발(發) 금리 인상은 이미 시작됐다. 고금리와 고물가에도 모자라 환율까지 높아지는 이른바 '3고(高)'의 가시밭길 위에 서 있다. 당국은 한사코 아니라고 하지만, 경기는 식어가고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경고하는 경제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물가 안정을 방해하는 것들과의 싸움에 집중해야 할 때다. 최우선 국정과제로 물가 안정을 선언한 새 정부의 세심한 대책이 절실하다.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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