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출신 중국 '영화 황제' 김염과
중국 작곡가 니에얼의 우정 소재로
윤봉길 의사와 만남, 작가적 상상 더해
중국 영화사에서 빠지지 않는 명작 '대로(大路)'. 그 영화 주인공이 조선인 출신 김염(본명 김덕린)이란 사실은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독립운동을 하는 아버지(김필순)를 따라 어린 시절 만주로 간 그는 '동양의 할리우드'라 불리던 상하이에서 스타덤에 오르고 약 40편의 항일 영화도 찍어낸 인물이다.
예술의전당이 제작해 이달 16일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개막한 음악극 '상하이 1932-34'는 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극중 김덕린은 영화 제작 현장에서 음악가 니에얼을 만나고 김염이라는 예명의 배우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니에얼은 중국 국가(의용군진행곡)를 만든 작곡가다. 또 1932년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벌어진 윤봉길 의사 의거라는 역사적 사실과도 엮어내, 국적이 다른 두 인물이 예술과 항일 정신으로 뭉쳐 나아가는 전개로 감동을 전한다.
이 작품은 윤봉길 의사(1908~1932) 상하이 의거 90주년과 2022년 한중 수교 30주년 '한중 문화교류의 해'를 기념해 제작됐다. 대본을 쓴 국민성 예술감독은 "국적이 아니라 신념과 가치관을 나눈 우정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나를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상하이 1932-34'는 윤봉길 의사 의거 장면을 중심으로 나뉜다. 꿈을 좇는 청년들의 희망찬 전반부와 달리, 이들의 항일 정신이 깨어난 후반부는 노래부터 비장하고 강렬하다. 두 인물이 윤봉길 의사와 만나는 장면 등은 작가의 상상력이다. 하지만 윤 의사의 의거가 당시 중국 내에서 국민당의 장제스 총재는 물론 이에 맞선 공산당 지도부인 마오쩌둥, 저우언라이까지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게 한 도화선이 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 설득력 있는 전개다.
영화가 주요 소재라 영화와 연극이 뒤섞인 독특한 연출도 눈에 띈다. 배우 10명이 80여 개 인물을 소화하는 방식은 다분히 연극적이다. 반대로 김염이 훙커우 공원으로 향하는 모습을 일인칭 시점의 영상으로 보여주거나 극중 영화 '풍류검객' 촬영 장면을 라이브캠을 활용해 무대 뒤편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영상 활용은 영화적 특징을 반영했다.
서양 문물이 쏟아졌던 1920, 30년대 상하이의 다양성을 음악으로 표현해낸 것도 특징이다. 친근한 멜로디와 리듬도 듣기에 편하다. 특히 윤봉길 의사가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을 그대로 가사에 가져온 넘버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는 극중 인물들은 물론 관객에게 큰 울림을 선사한다. 이후 감명받은 김염과 중국 영화인들이 합창하는 '영화인들이여' 등으로 극은 절정에 이른다.
김염 역에는 백승렬과 손슬기, 니에얼 역에는 안태준이 무대에 선다. 이번 공연은 이달 30일까지 열린다. 극이 펼쳐지는 1932년을 상징하는 의미로 주중 화·목·금 공연은 19시 32분에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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