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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감 더해가는 핵전쟁 위협

입력
2022.04.15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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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침략 러시아 핵 사용 시사
전술핵 확산되며 핵전쟁 문턱 낮아져
더 어려워진 비핵화 슬기롭게 대처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략 직전인 2월 19일 캄차카반도의 쿠라 훈련장에서 '야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훈련을 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영상 캡처·연합뉴스

미국 프린스턴대학 연구실에서 2019년 ‘플랜 A’라는 이름으로 핵전쟁 시뮬레이션 동영상을 만든 적이 있었다. 실제 전력에 기반해 제작한 4분짜리 이 동영상은 유럽에서 분쟁이 일어나자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경고하기 위해 러시아 전폭기 한 대가 칼리닌그라드 기지를 이륙해 폴란드와 독일 국경에 전술핵 한 발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러시아는 핵전쟁 확대를 염려한 나토가 전쟁에서 물러서길 바랐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된다.

바로 독일 미군기지에서 출발한 전폭기가 칼리닌그라드를 핵으로 보복 공격하자 러시아는 다시 300기의 핵미사일로 나토 군사기지를 파괴한다. 나토 역시 180기의 핵공습으로 맞선다. 유럽이 초토화되자 미국은 본토에서 600기의 전략핵으로 러시아 군사기지 공격에 나서고 거의 동시에 러시아도 전략핵 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타격한다. 그리고 양국 주요 도시를 겨냥한 핵공격이 이어진다. 4시간 반 동안의 핵전쟁으로 3,410만 명이 숨지는 등 9,1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프린스턴대학 연구팀의 경고대로 유럽의 국지 전쟁이 전략 무기까지 동원되는 핵전쟁으로 확산될 위험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커지고 있다. 푸틴은 군에 핵무기 준비를 의미하는 ‘특별전투태세 돌입’을 지시했다. 크렘린 대변인은 “푸틴이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러시아가 원래 핵무기 사용에 적극적이었던 건 아니다. 소련 시절인 1983년에는 나토가 핵공격을 했을 때만 핵을 사용한다는 선제불사용 선언까지 했다. 당시는 바르샤바조약기구를 중심으로 소련의 군사력이 나토보다 우위여서 굳이 핵무기를 먼저 쓸 이유가 없었다. 전쟁이 발발할 경우 개전 초기 전술핵으로 열세를 보완한다는 전략을 가진 건 오히려 나토였다. 전술핵을 ‘약자의 무기’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그런데 이런 구도가 소련 해체로 뒤바뀌었다. 러시아는 1990년대부터 재래식 전력에서 서방에 열세라는 전제 아래 군사 전략을 수립했다. 군사력 차이는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더 벌어져 러시아는 드디어 푸틴이 집권한 2000년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대규모 침략 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선제 핵사용 원칙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2020년 국가정책지침에서는 핵무기 사용 조건 중 하나로 자국이나 동맹국이 탄도미사일 공격을 받았을 때를 포함했다.

핵탄두는 ‘상호확증파괴’ 논리로 그동안 사용할 수 없는 무기로 통했다. 하지만 파괴력을 제한한 전술핵 때문에 점점 사용 가능한 무기가 돼가고 있다. 러시아는 전체 6,250여 기 핵탄두 가운데 1,000~2,000개가 이런 전술핵이라고 한다. 미국 역시 트럼프 정부에서 전술핵 개발과 배치를 확대해 바이든 정부도 이 지침의 근간을 유지하고 있다.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핵무장 여론도 분출한다. 러시아 우방 벨라루스는 최근 개헌을 통해 핵무기 배치의 길을 열었다. 중국과 북한이 핵무기를 강화하자 국내는 물론 피폭국 일본에서 핵공유가, 중국의 위협에 직면한 대만에서 핵무장 여론이 부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핵전쟁으로 이어지지 않고 마무리되더라도 핵군축 노력에는 이미 찬물이 끼얹어졌다. 불행히도 핵전쟁이 벌어진다면 그 피해와 후유증은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일국의 주권 유린이나 전후 유럽의 안보 지형을 흔드는 도전에 그치지 않는다. 점점 가능성이 높아지는 핵전쟁을 어떻게 억제할지, 핵 도발이 현실이 될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지혜로운 답을 준비하지 않으면 인류 공멸이라는 악몽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 핵확산 억제라는 숙제 또한 무겁다. 북한과 중국을 마주한 바로 우리의 과제다.

김범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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