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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잘싸'라는 뻔뻔함

입력
2022.04.14 19:00
수정
2022.04.14 19:2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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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 지도부 복귀 후 검수완박까지
언제까지 성찰 없이 대안 부재 외치나
팬덤 정당 못 벗어나면 '야당 복'일 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수완박과 관련한 질의를 듣고 있다. 뉴스1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수완박과 관련한 질의를 듣고 있다. 뉴스1

한동훈 검사장의 법무부 장관 지명이 무리수라 해서 더불어민주당의 검찰 수사권 박탈이 정당할 수는 없다. 검찰개혁의 명분에는 동의할 국민이 많지만 윤석열 당선인 취임 전 4월 국회에서 처리한다는 건 정상이 아니다. "5년간 뭐 하다가 졸속으로 하냐"는 천정배 전 의원의 말 그대로다. ‘문재인·이재명 지키기’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무조건 5월 10일 자정에 청와대를 국민에 돌려드린다”던 윤 당선인을 향해 “민생에 백해무익하고 국가안보에 재앙”이라고 비판한 게 민주당이다. 하물며 국방부 이사조차 안보 공백이 염려되는데 사법시스템의 변화가 야기할 수사 공백은 어떻겠는가. 전문가, 관련 단체들 모두 우려하는 바다. 국민을 지우고서 여론을 얻을 수는 없다.

“졌지만 잘 싸웠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말 바꾸기로 신뢰를 잃고 뒤늦게 성평등 원칙을 천명한 이재명 대선 후보를 비롯해 민주당은 잘 싸우지 않았다. 부동산 정책을 철회하면서 문제가 세금인지 주거불안인지 구분조차 하지 않았다. 내로남불을 불식시키기엔 사과와 반성이 너무 늦었다. 국민의힘의 젠더 갈라치기엔 중심 못 잡고 흔들렸다. 남초 커뮤니티 눈치를 보며 이 후보의 유튜브 씨리얼 출연을 만류한 김남국 의원은 반성문을 써야 한다. 민주당은 정권심판론을 되돌리는 데에는 실패했으나, 여성 배제 선거를 심판하고자 “팔을 자르는 심정”으로 결집한 젊은 여성들이 있었기에 처참하게 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니 박지현 비대위원장을 영입하고 당내 투쟁을 불사하며 이 흐름을 만든 일부를 제외하면 민주당은 제대로 싸워 본 적도 없다.

“대안이 없다”는 핑계에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패배한 지도부가 비대위원장으로, 서울시장 후보로 돌아온 것은 대안이 없는 게 아니라 쇄신 의지가 없는 것이다. 지난 총선에 위성정당을 세울 땐 “비난은 잠시”라고 했다. 검수완박은 “지금 아니면 안 된다”고 한다. 민주당에는 더 이상 원칙이란 게 없다. 현실론, 대안부재론이 유일하게 남은 원칙인 모양이다. 원칙 없이 눈앞의 승리에 연연한 것이 민주당 내로남불의 시작이었고 강고한 정권심판론의 주요한 이유였다.

민주당은 지금 ‘우리가 누구를 대변하는 정당인가’를 고민하고 합의해야 할 때다. 원칙을 상실하고 방향성 없이 오락가락한 숱한 잘못은 근본적으로 당의 정체성이 확고하지 않은 탓이다. 아니, 문자폭탄을 투척하는 강성 지지층에 매몰돼 누군가를 지키는 팬덤 정당의 정체성만 남은 탓이다. 대선에 지고도 변화와 성찰이 없다. 여전히 “졌잘싸는 허언성세”라고 한 이상민 의원에게 문자폭탄이 쏟아지고, 검수완박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이들에게 악플이 달린다.

사실 민주당에는 선물처럼 주어진 절호의 기회가 있다. 내 손으로 해결하겠다고 패배한 정당으로 걸어 들어온 20만 신규 당원에, 압도적으로 질 게 뻔했던 선거를 0.73%포인트 차로 만든 혐오정치 견제 세력에 귀 기울여 보라. 그 중심인 20대 여성의 성향상 복지와 환경을 중시하고,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고,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시민의 요구를 듣게 될 것이다. 민주당이 팬덤 정치에서 벗어나 합리적 원칙을 바로 세우고 이 진보적 요구에 호응한다면 이야말로 중도와 진보를 아우를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닐까.

이런 미래를 보지 못하는 민주당 주류의 좁은 시야가 안쓰럽다. 지금 혁신의 기회를 묵살하는 것은 민주당이 저지를 가장 큰 과오가 될 것이다. 성찰도 변화도 안 보이는 민주당은 새 대통령의 ‘야당 복’이 될 것만 같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집무실 이전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여도, 안철수 인수위원장과의 공동정부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려도 정치적 타격이 크지 않다면 그건 민주당 덕분일 것이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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