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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종 당일 뇌출혈로 숨진 남편 … “백신 독하다던 의사 말이 귀에 맴돌아요”

입력
2022.04.19 04:30
수정
2022.04.19 09:0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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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일상, 남겨진 상흔] <1> 백신피해자들

편집자주

코로나19가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일상이 2년 여 만에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상처마저 회복된 건 아니다. 제대로 돌보지 않은 상처는 덧나고 곪아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다. 또 다른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남은 문제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백신 피해자, 후유증, 의료 인력, 교육 문제 등 4회에 걸쳐 알아본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 9월 이현숙씨의 남편과 딸이 인천 월미도에서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현숙씨 제공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 9월 이현숙씨의 남편과 딸이 인천 월미도에서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현숙씨 제공

“아빠 죽이지 마. 살려내란 말야. 난 아빠 없으면 못 살아. 자꾸 이러면 나도 따라 죽을 거야.”

지난해 10월 말. 여덟 살 딸은 병실 침대에 누워 있던 아빠(43)를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남편은 일하는 아내 대신 딸을 키웠던 자상한 아빠였다. 그런 아빠가 병원에 들어간 뒤 오랫동안 안 보였기 때문일까. “더 추워지기 전에 아빠, 이제 집에 와야 하는 거 아냐?” 딸은 틈만 나면 졸라댔다.

1차 접종 뒤 47일 만에 '급성뇌출혈' 사망

이현숙(46)씨는 아빠의 마지막 얼굴이라도 봐두란 생각에 딸을 병원에 데려갔다. 딸은 울부짖었고, 그런 딸을 꼭 끌어안고 “아빠가 기계로 숨쉬는 게 너무 힘들대. 이젠 편히 보내주자”고 달래고 또 달랬다. 이씨는 이런 딸에게, 아빠가 왜 우리 곁을 떠나야 하는지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갑갑했다.

남편은 그로부터 며칠 뒤인 11월 1일, 딸의 눈물과 1,400만 원대의 병원비가 무색하게 숨을 거뒀다. 남편의 사인은 급성뇌출혈에 따른 뇌와 간 기능부전. 멀쩡하던 남편이 화이자 백신 1차 접종을 한 지 47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뉴스에서나 보던, '정부가 인정해주지 않는 코로나19 백신 피해 유족'이 됐다.

2017년 부천호수식물원을 찾은 이현숙씨의 남편이 딸을 안은 채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고 있다. 이 사진을 찍은 이씨는 "아이가 포즈 잡고 기다린 채 찍는 게 너무 어려워, 순간적으로 찍다보니 남편이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현숙씨 제공

2017년 부천호수식물원을 찾은 이현숙씨의 남편이 딸을 안은 채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고 있다. 이 사진을 찍은 이씨는 "아이가 포즈 잡고 기다린 채 찍는 게 너무 어려워, 순간적으로 찍다보니 남편이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현숙씨 제공


수술했던 의사 "이렇게 지혈 안 되는 경우 처음"

남편이 백신을 맞은 건 지난해 9월 16일 오전 10시. 6시간 정도 지난 오후 4시쯤,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마비가 왔대.” 다급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후엔 큰 문제가 없었다. 이씨의 일터는 집에서 불과 10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곧바로 119에 신고해 20분 만에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병원에선 '급성뇌출혈'이긴 하지만, 골든 타임도 지켰고 수술도 잘됐으니 별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문제는 이튿날부터였다.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곧바로 2차 수술까지 했지만 그다음에 내놓은 설명은 “뇌 손상이 커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다. 뒤돌아서서 가는 의사의 혼잣말은 아직도 이씨의 머릿속에 울린다. 그는 “이렇게 지혈이 안 되는 경우는 처음인데"라며 "화이자 백신이 문제가 많네”라고 했다.

9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백신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백신 이상반응 의심증상 사망자의 유가족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부둥켜 안은 채 목놓아 울고 있다.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는 올해 1월11일 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 코백회 제공

9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백신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백신 이상반응 의심증상 사망자의 유가족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부둥켜 안은 채 목놓아 울고 있다.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는 올해 1월11일 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 코백회 제공


부검하라더니 부검 전에 "인과성 없다" 결론

남편은 건강했다. 그냥 남 보기에 그랬다는 게 아니라, 최근 25년간 이렇다 할 병원 의무기록 자체가 없었다. 크게 아픈 적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백신에 문제가 많다'던 의사의 혼잣말이 더 크게 느껴졌다. 갑자기 뇌출혈이 오고, 수술 잘해도 지혈이 안 됐던 그 모든 상황이 백신 때문 같았다.

하지만 들었던 대답은 "모르겠다", "아니다"뿐이었다. 병원도, 의사도 백신 때문이라 보긴 어렵다거나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만 했다. 백신과의 인과성을 따져본다는 코로나19 예방접종 피해조사반도 그저 병원의 의무기록을 가져다 검토했을 뿐, 의사에겐 연락도 없었다 했다.

대신 정부는 부검을 하라 했다. 부검을 안 하면 보상 등급 판정을 받을 때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부검에 동의했더니 부검 결과가 채 나오기도 전에 '백신보다는 다른 이유로 질환이 발생했다'는 '④-2 판정'이 내려졌다.

정부는 백신 이상반응 인과성 등급을 총 5단계로 구분하고 있는데, ①~③은 인과성을 인정해 피해를 보상하며 ④는 시간적 개연성은 있으나 백신과 이상반응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④-1), 백신보다는 다른 이유에 의한 가능성이 더 높은 경우(④-2)로 나눠 ④-1만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⑤는 명확히 인과성이 없는 경우다.

아직도 나오지 않은 부검 결과

백신과 이상반응 간 자료가 충분치 않지만 시간적 개연성이 있다는 '④-1 판정'을 받으면 치료비 최대 3,000만 원, 사망자에게는 위로금 5,000만 원을 소급 지원한다. 백신 맞은 당일 6시간 만에 급성뇌출혈이 발생한 남편은 이에 해당하지 못한 것이다. 급성뇌출혈은 언제,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질환이라는 이유에서다.

더 당황스러운 건 아직도 남편에 대한 부검 결과를 못 받아봤다는 점이다. 이씨는 "4월쯤엔 나온다더니 아직도 부검결과가 안 나왔다"며 "코로나의 경우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요즘은 딸 걱정이 더 커지고 있다. 거실에 놓인 아빠 사진만 멍하니 보는 시간이 늘어난 딸에게 정신과 상담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2월 코백회 회원들이 토요집회를 마친 후 청와대로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코백회 제공

2월 코백회 회원들이 토요집회를 마친 후 청와대로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코백회 제공


"돈보다는 제대로 된 설명을 듣고 싶다"

이씨 같은 사연을 가진 이들이 모여 만든 단체가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코백회)다. 백신 맞고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숨진 가족, 무조건 맞으라 해서 맞아야만 했던 의료진 가족 등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코백회에는 인과관계를 인정받지 못한 사망자 206명, 중증환자 117명 등 325명의 가족이 속해 있다. 하지만 이날까지 정부가 인과성을 인정한 사망 사례는 15건, 이 중 보상이 이뤄진 건 4명에 그친다. 나머지 11명은 보상 신청을 하면 지급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월 15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백신희생자 분향소를 찾아 분향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월 15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백신희생자 분향소를 찾아 분향하고 있다. 뉴스1

이씨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건 '제대로 된 설명'이다. “치료비, 장례비, 사망보상금 지원이요? 받으면 좋죠. 하지만 그런 돈보다는 정부의 태도에 더 화가 나요. 백신 안 맞았으면 살아있을 멀쩡한 사람이 죽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고 사과부터 하는 게 먼저 아닌가요. 그저 접종 당일 몸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 것 같다고만 하면 되는 건가요."

일상회복의 기대감이 흘러넘치는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 앞에 설치된 코백회 분향소에서 이씨는 그렇게 울먹였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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