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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해결하려면 한미 누군가는 대화 재개 시동 걸어야"

입력
2022.04.14 17:00
수정
2022.04.14 17: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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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곤의 노크] 이상현 세종연구소 소장 인터뷰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북한이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데 이어 핵실험 징후까지 감지됐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와 마찬가지로 정권 교체기 한반도에 또다시 북한발 리스크의 암운이 짙어지는 모양새다. 미중 패권 경쟁은 격화하고 남북ㆍ북미 대화마저 실종돼 한반도 안보 환경은 어느 때보다 아슬아슬하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줄곧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대외정책의 급변침을 예고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북한 도발에 맞서 원점ㆍ선제타격은 물론 사드 추가배치까지 거론했다. 문재인 정부와 달리 대외정책에서 우클릭 노선을 분명히 함에 따라 차기 정부에서 한반도 평화는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소장을 만나 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 방향성을 전망하고 진단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소장이 11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차기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을 진단했다. 이 소장은 "국제적 거버넌스 부재와 미중 패권 경쟁, 북한의 대화 단절 등 한반도 안보 환경은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윤석열 정부에서 긴장과 대결을 조장할 이유는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성남=최주연

이상현 세종연구소 소장이 11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차기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을 진단했다. 이 소장은 "국제적 거버넌스 부재와 미중 패권 경쟁, 북한의 대화 단절 등 한반도 안보 환경은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윤석열 정부에서 긴장과 대결을 조장할 이유는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성남=최주연

-북한이 15일 전후로 핵실험까지 강행할 태세다. 정권 교체기 북한의 고강도 도발의 의도는 무엇인가.

“북한 입장에서 올해 4월은 대단히 의미 있는 시기다. 15일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 110주년을 맞아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북한 주민에게 어떻게든 성과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경제는 더 어려워지고 외교적 고립도 심화하면서 내세울 만한 게 별로 없는 상황이라 핵과 미사일 강화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핵과 미사일을 김정은 정권 수립 10주년의 성과로 제시하는 셈이다. 여기에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메시지도 포함돼 있다. 과거 전략적 인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에 실망한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자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남한의 보수 정부 출범에 앞서 초반에 기선을 잡겠다는 길들이기 차원의 도발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한국과 미국의 대응 강도를 예상한다면.

“윤 당선인이 선제 원점타격을 공언했으나 군사적 대응은 예상하기 쉽지 않다. 지난번 화성17형 미사일 발사로 북한은 이미 레드라인을 넘은 상황이라 핵실험을 하더라도 레드라인 재확인 의미 이상은 아니다. 그렇다면 미국이나 한국의 추가 대응은 제재 강화밖에 없다. 북한이 2017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을 때 유엔 안보리에서 유류 공급을 차단하는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는데, 추가로 도발하면 금수 규모를 더 늘리는 소위 트리거 조항이 포함돼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면 당시 제재보다 더 큰 제재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실기동 병력을 동원한 한미연합훈련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한발 더 나간다면 핵 대비 훈련까지 포함될 수 있다. 북한이 가장 우려하는 미국의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도 현실화할 수 있다.”

-대북 제재가 실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어려운 북한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바이든 정부가 작심하고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까지 감행한다면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강대강 상황에 비춰보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결국 실패한 것으로 볼 수 있나.

“공과 양 측면을 모두 평가해야 한다. 공이라면 정상회담을 들 수 있다. 톱다운 방식의 접근으로 9ㆍ19 군사 합의를 이끌어냈고 현실적으로 무력 충돌을 피했다. 작년 5월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 또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아주 포괄적이고 다양한 의제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 MB 정부의 포괄적 전략동맹과도 비슷하다. 윤 당선인 또한 한미 포괄적 전략동맹을 지향한다고 거론하는데 지난해 공동성명을 그대로 이행하면 된다. 북한에 올인한 대목은 분명한 과오로 평가해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도 북한이 진정한 의도를 갖고 했다기보다 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한국을 활용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든다. 미국과 관계 개선이 급한 북한 입장에서는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남한 당국에 불만이 상당했다. 중재자 역할 때문에 한미 관계는 느슨해졌고 중국을 견인하느라 4강 외교도 퇴색했다. 중재자 역할의 성과가 제한되면서 북한 핵과 미사일 능력만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윤석열 정부, 평화와 안보 균형적 접근해야"

이 소장은 평화와 안보 카드를 적절히 조율해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것을 윤석열 정부에 주문했다.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군사태세도 강화한 DJ정부를 벤치마킹하라는 지적이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에 대해 평가한다면.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나 인수위 참여 인사들이 미국통 위주라는 느낌이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북한에 올인하면서 4강 외교가 약해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중국의 힘을 빌려 북한을 다루려다 중국 눈치를 보는 경우도 생겼다. 북한 올인이 잘못됐다고 미국 올인으로 가는 게 옳은가라는 질문이 가능한데, 보다 균형적 접근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의 비핵화 대북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어쨌든지 누군가는 대화 재개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대화가 없으면 북한은 영변 핵 활동을 계속할 것이고,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핵 물질은 점점 쌓이게 된다. 북핵 프로세스를 저지하려면 과거 핵, 현재 핵, 미래 핵을 구분해 미래 핵(핵물질 생산)부터 동결하는 협상을 해야 한다. 미국도 한 방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건 어렵다고 보고 있다. 김정은이 영변 핵은 포기 의사를 밝힌 만큼 한미가 반대급부로 석유금수를 완화해 주는 방식을 포함한 상응 조치를 조건으로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 조야에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다시 거론하는 등 대화의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의 강공에 맞대응한다면 평화는 멀어진다. 강대강 대결로 치닫지 않도록 북한 도발에 대응할 수 있는 묘책을 찾는 게 진짜 실력이다. 순수한 군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선제ㆍ원점타격도 필요하고 군사 당국은 시위도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건 상책이 아니다. 군사 당국이 원점 타격을 위한 만반의 대비를 하고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관리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미국 조야의 CVID는 비핵화의 큰 전제로 이해하면 된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서 최종 목표로 보면 된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능력이 상당 수준에 오른 상황이라 단칼에 정리하는 것은 현실성도 없다.”

-대화의 입구를 찾기 위해 윤석열 정부가 선제적으로 움직일 여지가 있나.

“예를 들어 특사 같은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다만 윤 정부의 외교 안보 채널은 접근이 쉽지 않을 것이다. 윤 정부에 과거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는데 시대가 바뀐 만큼 MB정부 방식으로 북한을 다룰 수는 없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능력이 강화됐을 뿐아니라 김정은 체제도 상당히 안정됐다. MB시절 인사를 기용하는 것은 좋은데 당시 시각으로 북한을 다뤄서는 안 된다. 과거 보수 정부는 안보 위주로 북한을 상대하고 진보 정부는 평화에만 매달리면서 혼선을 키웠다. 대북 정책에서는 평화와 안보라는 당근과 채찍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북 정책에서 윤석열 정부가 벤치마킹할 만한 역대 정부가 있다면.

“DJ정부가 그래도 잘 했다. 미국에 할 말을 하면서 북한을 견인했다. 안보도 튼튼히 하면서 평화 메시지도 적절히 보내는 식이었다.”

-윤석열 당선인이 한국군 부대보다 평택 주한미군 기지를 먼저 방문하면서 미국편중에 대한 우려가 많다.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과시하는 차원의 행보로 보인다. 윤 정부도 실제 정책을 하다 보면 한미 관계가 외교안보의 전부가 아니란 걸 분명히 깨닫게 될 거다. 한미 군사협력만 해도 기지 반환 문제나 환경오염 문제 등 불편한 이슈가 적지 않다. 이런 문제를 전략적 파트너십 아래서 건강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게 중요한 숙제가 되고 있다.”

"보복 두려워 말고 중국에도 할 말은 해야 한다"

윤 당선인이 사드 추가 배치나 쿼드(미국과 인도, 일본, 호주 4개국 안보협의체) 가입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한반도 안보 환경은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이 소장은 “중국의 보복이 두려워 할 말도 못하는 외교를 할 이유는 없다”고 지적했다.

-쿼드 가입의 득실을 따진다면.

“애초 쿼드의 출발이 중국 견제 목적은 아니었다. 2004년 인도양 쓰나미 피해 복구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협의체로 시작한 뒤 해상 합동훈련이 더해지면서 안보대화 성격을 갖춘 것이다. 공식 조약도 아닌 만큼 한국이 가입하느냐 마느냐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국익을 고려해 백신이나 첨단기술 등 이슈별로 협력할 것인지를 결정하면 된다. 반중국 군사동맹에 가입하면 사드 도입 때처럼 중국의 보복을 자초할 것이라는 우려도 근거가 없다. 인도조차 쿼드의 군사화는 반대하고 있다.”

-윤 당선인의 사드 추가 배치 발언으로 이른바 3불 정책(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동맹,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참여 반대) 폐기 가능성이 대중외교 악재로 거론되고 있다.

“중국이 거론하는 3불 정책은 합의가 아니라 우리 정부의 입장에 불과하다. 중국과 합의한 적이 없다고 속 시원하게 밝히지 못하는 대목이 아쉽다. 윤 정부에서는 ‘과거 한국 정부가 논의한 것이라 존중은 하나 합의나 정책이 아니고 입장이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면 바뀔 수도 있다’는 방향으로 접근하면 된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능력이 강화된 상태에서 우리 정부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중국에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그 연장선에서 사드 추가 배치도 거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현재 상주의 사드 포대가 비정상적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추가 배치보다는 배치 정상화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대중국 외교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좋은가.

“중국은 앞으로도 한국을 흔들고 보복하면서 비용을 요구할 것으로 보이는데 한미동맹이라는 우리 외교 우선순위를 유지하려면 불가피한 비용이다. 외교는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싱가포르나 호주 모두 보복을 감수하면서 중국에 할 말은 하고 있다. 우리 정체성을 지키고 외교 우선순위를 지킬 각오가 있다면 그 정도 비용은 감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청와대 국가안보실(NSC)을 개편할 필요는 없나.

“문재인 정부에서는 청와대 안보실이 외교안보의 모든 이슈를 장악했다. 대북 정책은 물론 한미 관계, 심지어 탈원전 정책까지 다뤘다. 청와대 안보실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정책 조율 기관으로 미국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기구라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조직도 커져야 한다. 청와대가 외교안보 이슈를 해결할 능력도 없으면서 독점하다 보니 대북 이슈들이 청와대에서 발목이 잡히는 병목 현상이 일어났다. 문재인 정부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청와대가 독점할 생각하지 말고 국방부와 외교부, 통일부 등 실무 부서에 역할을 분담시켜야 한다. 청와대는 보다 큰 차원에서 국가안보 전략 방향을 잡고 비전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된다.”

김정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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