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늙어갈 수 있어 다행이다

입력
2022.04.13 20:00
25면
0 0
기민석
기민석목사ㆍ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이 지혜가 있다고 해서 오래 기억되는 것도 아니다. 지혜가 있다고 해도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슬기로운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사람도 죽는다.

전도서 2:16

생명은 관성이 있어 멈추기를 두려워한다. 모든 생명은 불멸을 꿈꾸며, 그래서 죽음을 거세게 거부한다. 성서의 지혜 문헌 곳곳에서 들리는 나지막하고 음산한 배경음악은, 이 불가피한 죽음이 자아내는 것이다.

자기 의지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저 눈을 떠보니 인생을 덜렁 부여받았다. 하지만 생명은 의지 확고하다. 욕망과 야망으로 우리의 젊음을 불끈거리게 하고, 세상이 주는 그 대가는 달콤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인생은 성적표가 무용지물이다. 99점 인생도 20점 인생도 결국에는 같은 보상을 받는다. 죽음이다. 자기의 자랑 어느 것도 못 가져간다.

어머니 태에서 맨몸으로 나와서, 돌아갈 때도 맨몸으로 간다. 수고해서 얻은 것은 하나도 가져가지 못한다.

전도서 5:15

주어진 생명을 그렇게나 불태우고 공적을 남기면, 부여받은 인생이 조금 더 연장되면 안 될까? 아낌없이 헌신했던 그 젊음을 조금 더 붙들 수는 없을까? 세상은 나에게 부와 명예로 보상해 주지만 생명은 조금의 에누리도 없다. 사그라지기 시작하면 저지할 방도가 없다. 원수도 영웅도 죽기는 마찬가지, 한량도 군신도 다름없이 죽는다.

누구나 볼 수 있다. 지혜 있는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자나 우둔한 자도 모두 다 죽는 것을! 평생 모은 재산마저 남에게 모두 주고 떠나가지 않는가!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여 제 이름으로 등기를 해 두었어도 그들의 영원한 집, 그들이 영원히 머물 곳은 오직 무덤뿐이다.

시 49:10-11

그래서 늙는 것은 다행이다. 노년기 없이 일정 시간이 지나 갑자기 생명의 스위치가 꺼진다면 얼마나 죽음이 황망할까? 그런데 우리는 노화를 겪으며 자연스럽게 욕구도 야망도 사그라든다. 늙는 것은 욕심을 버리라는 자연의 다정한 배려다. 늙어야 인생을 관조하며 허욕을 다스릴 수 있다. 늙으면 이런 자조를 할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여건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마련된다. 늙는 것은 욕심과 야망이 빚는 갈등에서 드디어 벗어나게 되는 창조주의 선물이다.

사람이 태어나 의욕 넘치게 살아야 할 시기도 있지만, 늙어 죽음을 향해 갈 때는 삼가고 자중하는 격이 필요하다. 그래서 늙어서도 욕심이 많으면 추해 보인다. 그런 추한 마음을 전도서는 이렇게 전한다.

세상에서 내가 수고하여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내 뒤에 올 사람에게 물려줄 일을 생각하면, 억울하기 그지없다. 뒤에 올 그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일지, 어리석은 사람일지, 누가 안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세상에서 내가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지혜를 다해서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그에게 물려주어서 맡겨야 하다니, 이 수고도 헛되다. 세상에서 애쓴 모든 수고를 생각해 보니, 내 마음에는 실망뿐이다.

전도서 2:18-20

결국 늙어서도 욕심을 부리면 억울하고 실망뿐이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삶을 관조하는 시기를 주었다. 그 시기는 인생의 쾌락과 욕구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야 할 시기다. 마지막에 걸어야 할 그 길은 누구에게든지 한 길뿐이다.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그 길 걷기를 잘 준비하자. 우리의 운명은 이와 같기 때문이다.

사람이 제아무리 영화를 누린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니, 미련한 짐승과 같다. 이것이 자신을 믿는 어리석은 자들과 그들의 말을 기뻐하며 따르는 자들의 운명이다. 그들은 양처럼 스올로 끌려가고, ‘죽음’이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시 49:12-13

기민석 목사ㆍ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