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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활동비는 쌈짓돈? 목적 안 맞게 함부로 쓰면 ‘국고손실죄’

입력
2022.04.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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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로 따져본 특수활동비 유·무죄>
정권마다 검찰 수사… 정상문 징역 7년 선고
국고손실, 횡령보다 형량 높아 사형도 가능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뇌물죄로 처벌도
강삼재 김재원 김백준 이영렬은 무죄 받기도

“나한테 넘어오면 내 돈 아닙니까?… 내 활동비 중에 남은 돈은 집사람 생활비로 줄 수 있습니다.”

2015년 5월 11일 기자회견에서, 홍준표 현 국민의힘 의원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이 불거졌던 2017년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정부와 공공기관의 특수활동비를 도마에 올렸다. 그는 "2016년 정부가 편성한 특수활동비가 약 8,900억 원"이라며 "특히 국정원의 경우 최근 10년간 비용이 약 4조8,000억 원에 달한다"고 폭로했다.

노 의원은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의원도 직격했다. 홍 의원은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당시 자신이 낸 기탁금 1억 2,000만 원이 불법자금이란 의혹이 제기되자 아내가 금고에 모은 돈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의원은 '부인 금고에서 발견된 돈은 국회운영위원장으로서 받은 특수활동비라서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이란 취지로 언급한 홍 의원 발언을 문제 삼았다. 홍 의원은 "급여를 특수활동비로 잘못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쌈짓돈처럼 사용되는 특수활동비' 논란은 한동안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특수활동비 내역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납세자연맹. 뉴스1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특수활동비 내역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납세자연맹. 뉴스1


목적 안 맞는 특활비 이용, 횡령·국고손실죄 해당

특수활동비 사용처를 둘러싼 의혹은 거의 모든 정권에서 터져 나왔다. 국가 예산으로 배정된 특수활동비를 쌈짓돈처럼 사용해온 실태가 드러나면서, 무분별한 사용에 대한 법적 처벌 필요성이 제기됐다.

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특수활동비는 돈을 지급받은 사람의 '사적 재산'이 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유용한 특수활동비에 대해 법원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사용하고 남은 청와대 특활비를 모아 뒀다가 국고손실죄 등으로 징역 7년을 선고 받은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 전 비서관은 "대통령에게 특활비가 지급되면 국고로서 성격이 사라지고 개인 것으로 봐야 한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보관과 사용을 위임했다고 주장했다.

국고손실죄 혐의로 유죄를 확정받은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한국일보

국고손실죄 혐의로 유죄를 확정받은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한국일보

대법원은 그러나 "특활비는 업무상 정당하게 집행될 때까지 국고로서의 성격이 유지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나아가 "남은 특활비를 대통령 퇴임 후 별도로 보관하라는 취지의 대통령 지시는 있을 수 없고, 했다면 위법한 지시"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특활비를 개인적으로 사용한 공직자에게는 정부 예산을 목적에 맞지 않게 빼돌린 업무상 횡령이나 특정범죄가중처벌상 국고손실 등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이 처벌 수위가 높은 국고손실 혐의를 적용하는 것은 특활비 유용을 심각한 범죄 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는 회계관계 직원의 부정부패를 강력하게 처벌할 목적으로 제5조에 국고손실죄를 명시하면서 최고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법안이 개정되면서 회계관계 직원에 의한 2억 원 이상 국고손실에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2,000만 원 이상 2억 원 미만의 경우에도 무기 또는 1년 이상 징역을 받도록 했다. 국고손실죄는 일반 횡령죄보다 공소시효도 더 길다.

국정원장도 국고손실·뇌물죄 적용 가능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전 국정원장. 한국일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전 국정원장. 한국일보

특활비와 관련해 여론의 이목이 가장 집중됐던 사건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특활비 상납·전용 사건으로 꼽힌다. 국가정보원이 특활비를 청와대, 즉 대통령에게 상납했다는 게 주된 의혹으로, 실제로 국정원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철창 신세를 졌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 공범으로 지목된 것도 전례 없는 일이었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은 국고손실죄를 넘어 뇌물죄까지 적용됐다.

재판 쟁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국정원장을 '회계직원책임법상 회계관계 직원'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국고손실죄는 회계 관련 업무를 맡은 직원이 공금을 횡령하면 가중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이를 의식한 듯 재판 내내 "국정원장은 회계관련 직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국정원장도 회계관계 직원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국정원장은 회계직원책임법에서 규정한 '그 밖에 국가의 회계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에 해당하는 회계관계 직원"이라며 "국정원장에게 배정된 특별사업비나 국정원 일반 예산을 직무 범위와 무관하게 사용하면 국고손실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도 국고손실 공범으로 유죄 판단을 받았다.

국정농단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등 혐의로 실형이 확정됐다가 사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국정농단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등 혐의로 실형이 확정됐다가 사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국정원 특활비를 청와대에 제공한 뇌물로 볼 수 있는지도 핵심 쟁점이었다. 청와대에 특활비를 지원한 행위가 국정원장들이 대가를 바라고 제공한 것으로 결론날 경우, '특활비 유용'은 뇌물죄로도 처벌이 가능했다.

법원은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사건에서 이병기 전 원장이 최경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건넨 특활비 1억 원과 관련해, 증액된 국정원 예산안을 편성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건넨 것으로 보고 뇌물로 판단했다. 이병호 전 원장이 2016년 9월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한 2억 원도 국정농단 의혹이 터진 후 '상납' 중단 지시가 있었는데도 건너간 '자발적 뇌물'로 봤다. 이에 따라 돈을 받은 최 전 장관과 박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혐의로 유죄 판단을 받았다.

고의·자금출처·직무관련성에 따라 '무죄' 판결도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연합뉴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연합뉴스

특활비 유용 혐의로 법정에 섰다가 무죄를 받은 경우도 있다. 1996년 '안풍 사건'에서 안전기획부(안기부) 자금을 신한국당 총선에 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삼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대표적이다.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그는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던 김재원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국고손실을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 지시에 따라 국정원 특활비를 받았다는 이유로, 이명박 정부 시절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은 회계관계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각 무죄와 면소 판단을 받았다.

이른바 '돈봉투 만찬' 논란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역시 처벌을 면했다. 이 전 지검장이 법무부 간부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건넨 격려금 봉투와 밥값이 검찰 특활비로 확인된 것이다. 검찰은 이 전 지검장에 대해 국고손실 혐의가 아니라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즉 김영란법을 적용했다. 법원은 이 전 지검장이 사용한 특활비에 대해 '하급 공직자를 격려하기 위해 사용한 정당한 직무범위 내 지출'로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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