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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줄푸세 시즌2'론 성공 못한다

입력
2022.04.11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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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
김성식전 국회의원

尹정부, 文뿐 아니라 李·朴과도 달라야
낡은 보수 집착 말고 정책지평 넓혀야
일자리-복지만이라도 정책연합 필요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8일 오후만찬 회동을 위해 청와대 상춘재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8일 오후만찬 회동을 위해 청와대 상춘재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원래 '정권교체'는 캠페인에는 유용하지만, 그 자체로 국민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지 못한다. 국민과 함께 새로운 미래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고 신뢰를 쌓는 것은 당선인과 인수위가 감당해야 할 숙제다. 지금 주로 들리는 말들은 강한 안보, 재정건전성, 경쟁력, 규제 완화, 감세 등등이다. 노동 분야는 유연성이 강조될 뿐 안정성은 뒷전이다. 박근혜 정권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 시즌2라는 느낌이 언뜻 든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어떻게 다른지 주로 이슈가 되지만, 국민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와는 무엇이 다를지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 때 대표 공약 '747'은 이륙하지도 못했고, '형님성공시대'는 열었지만 '국민성공시대'는 열리지 않았음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당내 경선을 '줄푸세'로 치른 박근혜 당시 후보는 본선 때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앞세워 신승했지만 집권 후엔 그 공약을 버렸고, 국민들은 '국민행복시대' 대신 국정농단의 시대를 체험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국정운영의 틀을 과감하게 바꾸는 것과 국정 기조를 시대에 맞게 진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준다.

며칠 전에는 당선인이 직접 나서 민생부터 챙기자고 강조했다. 그런데 지금 민생의 어려움은 유류세 더 깎아주고 전기요금 동결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일자리부터 예전 같지 않다. 중간 숙련도의 일거리들은 빠른 속도로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있다. 기존 근로기준법이나 사회보장체계로는 포괄되지 않는 새 형태의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격차와 소외의 단층이 깊어지고 있다. 그러니 혁신도 잘 수용되지 않는다.

이런 판에 과거의 보수 노선 강화로 매진한다면, 실용도 아니거니와 시대 안목의 부재일 따름이다. 군부 출신 노태우 정권이 민주화 이행기였던 집권 초기에 최저임금제와 국민연금을 제도화한 사실을 자칭 보수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기야 제대로 된 보수와 진보가 우리 정치에 언제 있었던가. 시대착오성을 드러낸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완전고용의 산업시대가 끝나고 1970년대 후반부터 후기 산업시대로 들어서면서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었고, 이후 선진국 보수정당들은 '따뜻한 보수'로, 진보정당들은 '제3의 길'로 진화의 홍역을 치렀다. 나름 족보가 있는 그들도 오늘날 대전환기의 거센 물결 앞에서는 맥을 못추고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에 공간을 내주고 있다. 글로벌 패권 경쟁, 디지털 전환과 노동시장의 불안정화, 기후 위기와 팬데믹의 일상화, 삶의 양극화와 파편화 등 격변 앞에서 과거 산업시대의 보수와 진보 타령은 쓰임새가 없다. 문명적 대전환에 부응하는 정책의 진화 능력과 문제해결의 정치적 역량이 '일 잘하는 정부'의 열쇠다.

경제사회정책은 생산성과 사회안전망의 동반 상승에 관한 현대적 기획이 핵심이다. 오늘날 혁신과 경쟁력은 민간 주도로 가는 게 맞다. 대신 정부는 사회투자국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대상과 위험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복지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정치권의 합의를 바탕으로 노동의 유연안정성과 일자리 격차 완화를 위한 타협의 길을 열고, 학교교육 및 직업훈련을 혁신하여 기술 급변을 헤쳐나갈 평생의 학습 기회를 넓혀야 한다.

혁신과 일자리와 복지를 연결하는 융합 해법, 편가르기와 표 계산에 왜곡되지 않는 제도 개선의 축적, 이것이 문재인 정부가 못해낸 것이다. 새 정부도, 방향은 다를지라도, 시효 지난 땜질 처방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실패의 함정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일자리와 복지 분야라도 정치권의 정책연합을 추구해야 할 절실한 이유이다. 정치세력의 부침이야 병가지상사라고 할지라도 나라와 국민이 더 골병들 여유는 이제 없다.

김성식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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