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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을 지키는 산맥, 터키를 일으킨 해협… "이념은 스쳐 가지만 지리는 영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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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을 지키는 산맥, 터키를 일으킨 해협… "이념은 스쳐 가지만 지리는 영원해"

입력
2022.04.07 16:34
수정
2022.04.07 16:4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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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스스로 무너진 이후로 세계는 한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미국이 세계의 구심점처럼 보일 정도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BBC에서 일하면서 국제 문제 전문 언론인으로 활동한 팀 마샬은 최근 국내에 출간된 저서에서 이 시대를 ‘단극의 10년’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중국이 부상하더니 러시아까지 국제 정치의 한복판으로 돌아왔다. 마샬은 “이제 우리는 양극 시대에서 벗어나 인류 역사 대부분에서 규범과도 같았던, 여러 열강이 경쟁하는 ‘다극화 시대’로 회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면서 산과 강, 바다와 해협, 평야와 사막이 국가와 지도자들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한다. “이념은 스쳐 지나가도 지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고 강조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터키는 세계 각국에 몽트뢰 협약을 존중해 보스포루스 해협의 군함 통과를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1936년 체결된 몽트뢰 협약은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 해협에 대한 터키의 전시 통제권을 인정하고 있다. 터키가 군함 통과 자제를 촉구한 무렵인 지난달 1일(현지시간) 화물선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터키는 세계 각국에 몽트뢰 협약을 존중해 보스포루스 해협의 군함 통과를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1936년 체결된 몽트뢰 협약은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 해협에 대한 터키의 전시 통제권을 인정하고 있다. 터키가 군함 통과 자제를 촉구한 무렵인 지난달 1일(현지시간) 화물선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던 2월 8일(현지시간) 러시아 발트함대 소속 상륙함 민스크호가 흑해로 가기 위해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발트함대와 북해함대 소속 대형 상륙함 6척이 훈련 참가를 위해 지중해에서 우크라이나 인근 흑해로 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던 2월 8일(현지시간) 러시아 발트함대 소속 상륙함 민스크호가 흑해로 가기 위해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발트함대와 북해함대 소속 대형 상륙함 6척이 훈련 참가를 위해 지중해에서 우크라이나 인근 흑해로 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 연합뉴스


마샬은 저서에서 다극화 시대에 발맞춰 기지개를 켜는 국가들을 소개하면서 이들의 역사와 현재의 움직임이 지리와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풀어낸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자신의 힘으로 지분을 찾으려는 호주부터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바꾸려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이란, 영국, 그리스, 터키, 사헬 지역, 에티오피아, 스페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리는 국가들에 성장의 동력이자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작동한다. 예컨대 이란의 국경지대 대부분을 구성하는 산맥은 이란을 요새로 만들었다. 험준한 산들이 식수조차 구하기 어려운 내륙의 황무지를 에워싸고 있다. 저자는 “당신이 제아무리 전쟁을 좋아하더라도 이란을 침공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한다. 중동의 주요 강대국,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과도 기싸움을 벌이는 잠재적 핵 보유국이지만 미국을 비롯해 어떤 나라도 파병하려 들지 않는 나라가 이란이라고 강조한다.

이란의 산맥과 황무지는 국민 통합을 가로막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거대한 소금사막으로 알려진 카비르 사막은 길이가 800킬로미터, 너비가 320킬로미터에 달한다. 식수를 구하거나 작물을 재배하기가 어려운 지형이다. 이란이 자리 잡은 땅 전역이 비슷한 상황이다. 이란 국토의 10% 정도만 경작지로 이용할 수 있다. 이렇게 척박한 땅 곳곳에서 쿠르드족, 발루치족, 투르크멘족, 아제리족, 루르족, 아르메니아인, 아랍인, 체르케스인 등이 살아간다. 산들로 가로막힌 지역에서 다양한 민족이 자신들만의 정체성과 문화를 유지한다.


지리의 힘2. 팀 마샬 지음ㆍ김미선 옮김ㆍ사이 발행ㆍ472쪽ㆍ2만3,000원

지리의 힘2. 팀 마샬 지음ㆍ김미선 옮김ㆍ사이 발행ㆍ472쪽ㆍ2만3,000원


터키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저자는 터키가 지중해와 마르마라해, 흑해를 연결하는 다르다넬스 해협과 보스포루스 해협을 끼고 오랫동안 동쪽과 서쪽 양쪽에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면서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터키에 ‘문지기와 같은 권력’을 쥐어주는 한편, 동시에 ‘살벌한 동네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세속적 민주주의와 결별하고 종교적 색채가 강한 권위주의 국가로 변모한 터키가 시리아와 리비아는 물론, 아랍 세계로 지배력과 영향력을 확장하면서 주변국과 군사적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세계가 좁아지고 가상공간의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지리는 여전히 “인간이 할 수 있거나 할 수 없는 것을 제한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현재와 미래에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은 그들의 물리적 배경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어느 나라든 그들의 이야기는 이웃 나라들, 바닷길, 천연자원 등과 관련된 그 ‘위치’에서 시작된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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